-서울동부지법 2007. 10. 4. 선고 2006가단60428 판결1)-

 
 
Ⅰ. 사안의 개요
(1) 피고 Y(H해운 주식회사)는 화물선 P(1,863t)의 소유자이고, 피고 Z는 위 선박의 조기장助機長으로 승선하여 근무하였으며, X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서 2004. 11. 12. 위 선박에 갑판원으로 승선하여 근무하였다.
(2) 선장 C와 선원들은 일본 오이타(Oita)항에서 화물을 선적하고 출항하여 전남 여수항을 향하여 통영시 욕지면 소재 국도 근해상을 항해하던 중, 2005. 6. 22. 23:30경 여수항에서 하선할 예정이던 기관장 송별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X는 위 송별회에 참석한 후인 2005. 6. 23. 00:15경 Z와 싸운 직후 다량의 피를 흘리면서 위 선박 여러 곳을 다니다가 실종되었다.
(3) 이 사건 선박에는 선장 C와 한국인 해원 9명, X를 포함한 조선족 해원 3명 등 총 13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있었다. X는 Z로부터 평소 여러 차례 욕설과 폭행을 당하여 다른 조선족 선원에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하였다.
(4) X가 실종되기 직전에 당직자들을 제외한 선장 등 10여명의 선원이 식당에 모여 기관장을 위한 송별회식을 하고 헤어진 다음, X는 식당에 붙어 있는 취사장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Z은 기관실에서 식당으로 올라와 X가 설거지를 하는 옆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5) X와 Z는 2005. 6. 23. 00:15경 위 식당에서 싸움을 하였고, 그 후 X는 실종되었는데, 이 사건 선박의 여러 곳에서 X가 흘린 핏자국이 발견될 정도로 실종 직전에 X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선장 C는 실종 당시 X가 다량의 피를 흘리고 있었음에도 그 직후에는 정선停船하여 수색하지 않다가, 실종 추정 시각으로부터 3시간 정도가 지나 본사 및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한 후 비로소 사고 장소로 회항하여 수색하였다.
(6) 이에 X의 부모인 원고들은 피고 Y, Z를 상대로 유족보상금 및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판결의 요지
(1) 선장은 해원을 지휘·감독하며 선박 안에 있는 자에게 선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고, 해원이 선박 안에서 싸움, 폭행, 음주소란행위를 하는 경우 등에는 이를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선원법 제3조 제2호, 제3호, 제6조, 제24조 참조). 이와 같이 선원법에 의하여 선장은 당해 선박의 선원들에 관한 지휘감독권, 직무명령권, 징계권 등 여러 권한을 가지고 선장을 정점으로 하여 명령계통이 확립되어 있고 다소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선박의 특성상, 하급선원인 X가 상급선원인 Z와의 싸움 직후 다량의 피를 흘리는 상태에서 선박 안에서 실종하였다면, 선박을 장악하고 있는 피고 Y측에서 X의 실종원인이 다른데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이 사건 선박 내에서 일어난 Z와 X 사이의 싸움과 X의 실종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함이 상당하다.
(2) 또한 Z는 X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괴롭혀 왔으며 실종 직전 X와 싸우다 도망가는 X를 뒤쫓아 간 과실이 있고, 피고 Y의 사용인인 선장 C는 Z가 X를 위와 같이 폭행하고 괴롭히는 것을 적절하게 제지하고 필요한 징계권과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으므로, 피고들은 자신들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한 X의 실종사고로 인하여 X 및 그 부모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인 고통을 금전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
 

Ⅲ. 선장의 지휘·감독권과 명령권
1. 선박공동체론

선원들은 선장을 항해지휘자로 하는 유기적인 조직체를 조직하여 그 조직체계 속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근로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그 공동체가 존재하는 장소인 선박이 바다를 항해하는 인공적인 구조물인 점에서 선박공동체라 할 수 있다.
 

2. 선박권력
선박권력Schiffsgewalt이란 항해위험의 극복과 선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장에게 부여된 공법상 권한을 의미한다. 선원법상 선박권력에는 지휘감독권·명령권·강제권·행정기관에 대한 원조요청권·징계권 등이 있고,2) 특별법상 선박권력으로는 사법경찰권 등이 있다. 현대의 법령이 선장에게 선박권력을 인정하는 것은 기교적인 법적 산물이 아니라 선박의 일관성 있는 지휘를 위한 필요성에서 유래한 것이다.3)
 

3. 선장의 지휘·감독권
가. 의의

선장은 해원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선원법 제6조 전단). 독일 해양노동법 제121조 제1항 제1문도 선장을 선원 중 최고의 상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4) 선주선장은 선원근로계약상 사용자의 지위에 기하여 해원에게 노무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근로자의 지위에 있는 선장5)이 해원에 대하여 사법상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선박소유자가 선장에게 부여한 대리권의 존부 및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선장의 해원에 대한 지위가 선박소유자와 선장 사이의 계약에 의하여 결정되면 법률관계가 불안정하게 되므로, 선원법은 선장에게 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선원법상 선장의 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선장이 선박소유자의 대리인으로 행사하는 사법상 지휘·감독권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명·선박·적하의 안전 및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선원법이 선장에게 부여한 공법상 권한이다.6) 지휘·감독권은 선장의 해원에 대한 일반적인 권한이므로 선장의 지휘·감독권 행사 자체에 대하여는 강제력이 부여되지 않지만, 선원법은 선장의 지휘·감독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명령권·강제권·행정기관에 대한 원조요청권·징계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나. 내용
선장은 선박공동체가 항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원들의 직무를 지휘하고, 직무수행의 적정성 여부를 감독할 수 있다. 선원법은 선장을 지휘·감독권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는데, 선장직무대행자도 지휘·명령권의 주체가 된다. 이와는 달리 선박소유자·선박관리인·선박임차인 등은 선원근로계약에 기하여 노무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공법상 권한에 속하는 지휘·감독권은 행사할 수 없다. 선장의 지휘·감독권은 법률에 규정된 선장의 고유권한이므로, 선박소유자가 선장의 지휘·감독권을 제한할 수 없다.7) 그러므로 선장이 선박소유자의 지시에 의하여 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부적절하게 행사한 결과 선박이 전복된 경우에도 선장은 선박소유자의 지시를 이유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

선장의 지휘·감독권의 행사대상은 명령권의 행사대상이 재선자인 것과는 달리 해원에 한정된다. 그러나 비번非番 중 하선한 선원은 선박항행조직에서 이탈한 것이므로 위 선원에 대하여는 지휘권이 미치지 아니한다.8) 또한 지휘·감독권의 행사범위는 해원 직무의 적법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합목적성·적정성까지 미친다.

선장은 선박지휘자로서 중대한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휴양권을 주장할 수 있음은 당연하고, 당직자에게 운항지휘를 위임하고 휴양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경우에도 감독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9) 선장이 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소홀히 한 것이 민·형사상 주의의무위반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민사책임,10) 형사책임,11) 행정법상 책임12)을 부담할 수 있다. 그러나 선장이 단지 해원들의 범죄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것만으로는 형사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13)
 

4. 선장의 명령권
가. 의의

선장은 선박소유자의 대리인으로서 그 피용자인 해원에 대하여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상업상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나, 여객이나 선내에 있는 사람(이하 ‘재선자’)에 대하여는 선박소유자의 대리인으로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권력으로부터 격리되어 해양에 있는 선박에서 선장은 선박의 최고책임자로서 선박의 안전과 여객·화물 운송 등 항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박권력을 보유하는데, 선장은 해원을 포함하여 선내에 있는 사람에게 선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선원법 제6조 후단).14)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아니 되므로(해사안전법 제45조), 선박소유자라도 선장의 공법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독일 해양노동법 제121조 제1항 제2문도 선장은 해원과 선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선장은 선내에서 공법상 최고명령권자의 지위를 가진다.15)
 

나. 명령권의 주체
선원법은 선장을 명령권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선장직무대행자도 명령권의 주체가 된다. 선장이 직접 명령권을 행사해도 무방하고, 지휘계통을 통하여 행사해도 무방하다. 선박소유자, 선박관리인, 선박임차인 등은 사법상 선원근로계약에 기하여 해원에게 노무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재선자에게 공법상의 권한에 속하는 명령권은 행사할 수 없다.16)
 

다. 명령권의 행사대상
선장의 명령권의 대상은 재선자이다. 재선자에는 해원, 하역근로자, 도선사, 선거장, 여객,17) 밀항자,18) 난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선장이 최종명령권자이므로,19) 선박소유자도 선내에 있는 경우에는 선장의 지휘명령권의 행사대상이 된다.20) 항해와 관련 없는 자들이 승선하고 있을 경우, 이들에 대하여 선장이 선박으로부터 퇴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선장의 명령권을 방해한 것이 된다.21)
 

라. 명령권 행사의 효과 및 한계
(1) 복종의무

  재선자는 선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적법한 명령에 한하여 복종의무가 있다.22) 독일 해양노동법 제124조 제2항은 “해원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범죄행위 또는 법령위반을 구성하는 경우에는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령권 행사의 전제가 되는 선장의 직무는 인명·선박의 안전확보와 선내 질서의 유지를 위한 공법상 직무에 한정되고, 선박소유자나 화주와의 계약관계에 기한 사법私法상 직무는 제외된다.
 

(2) 위법한 명령의 구속력 유무
선장의 위법한 명령에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판례의 법리를 유추하면, 선장은 재선자에게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권한은 없으며,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직무상 명령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재선자는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23)
선장의 적법한 명령에 따른 재선자의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지만, 선장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선장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재선자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24) 다만 재선자가 선장의 명령이 위법함을 몰랐을 경우에는 금지착오에 해당되며, 그 착오의 회피가능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한 책임이 조각된다.

이에 반하여 재선자가 명령의 위법함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였을 때에는 원칙적으로 책임이 조각되지 아니하나, 선장의 위법한 명령이 강요된 행위(형법 제12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책임이 조각되고,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제반 정황에 비추어 재선자가 이에 저항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기대불가능성에 근거한 책임조각사유가 될 수 있다.25) 판례는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명령에 따른 범법행위는 강요된 행위이거나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26)
 

(3) 불복종의 효과
해원이 상급자의 직무상 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때에는 선장은 해원을 징계할 수 있다(선원법 제22조 제1항 제1호). 해원 이외의 재선자가 선장의 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때에는 해원과 달리 징계책임이나 형사책임을 부담하지 않지만, 선장은 재선자가 인명 또는 선박에 위해를 줄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때에는 그 위해를 방지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선원법 제23조 제3항).27)
 

(4) 선장의 권한남용죄
선장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해원 또는 배 안에 있는 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그 권리의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선원법 제160조). 이는 형법 제123조의 공무원의 직권남용죄의 특별규정으로 형법 제123조에 비하여 법정형이 더 무겁게 규정되어 있다.
마. 해원의 쟁의권과 복종의무의 관계
해원이 선장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공법상 의무이므로,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28) 해원에게 복종의무를 발생시키는 선장의 직무상 명령은 인명·선박의 안전확보와 선내질서의 유지를 위한 공법상 직무명령에 한정되므로, 해원은 이와 관련이 없는 선장의 사법私法상 직무명령에는 쟁의행위를 이유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다.
 

Ⅳ. 사안의 검토
선원이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인 선박은 가정 및 일반사회에서 떨어져 해양을 항해하므로 선원은 자연적 위험과 인위적 위험에서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 있고, 선원들은 고립된 선박에서 함께 생활한다. 선상생활은 그 공간의 협소성, 폐쇄성, 외부세계와의 차단, 예측불허의 각종 위험의 발생, 절제되고 강도 높게 요구되는 노동 등 여러 사정으로 말미암아 선장 등 책임자들의 절대적인 지배하에 놓여 있는 장field이다.29)

선장은 선박소유자로부터 항해의 지휘감독권을 위임받은 자이므로,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고,30) 선원근로계약의 본질적 의무로서 해원이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
대상사안에서 X는 상급선원인 Z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장 C는 Z에 대한 지휘·감독권이나 명령권을 적절히 행사하여 가혹행위를 제지하거나 적절한 징계권을 행사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하였고, 이로 인하여 결국 X가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선장 C가 선원법에 규정된 선장의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한 것은 사용자인 선박소유자의 책임으로 귀결되므로, 법원이 C의 사용자인 Y와 실제 불법행위자인 Z에게 X의 실종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것은 선장의 지위 및 안전배려의무의 법리에 비추어 보면 지극히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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