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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예/ 9회 해양문학상-대상(소설부문) 쇄빙선(下)
[510호] 2016년 03월 02일 (수) 11:37:44 양진영 작가 komares@chol.com

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한국선주협회가 후원하는 ‘해양문학상’이 지난해 9회를 맞았다. 제9회 해양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작 가운데 대상 ‘쇄빙선’과 은상 ‘Standby All Stations!’를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1월부터 3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본호에서는 대상 수상작 ‘쇄빙선’을 실었다. 중편소설인 쇄빙선은 2-3월호에 2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진영  작가
『죽음이 순식간이라면 오늘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지럼증 탓인지 남편의 일기장에서 몰래 들여다본 문장이 어른거렸다. 하 대원은 그 구절을 곱씹을 때면 왠지 두려웠다. 남편이 찾고자 하는 것이, 그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틀림없이 아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언젠가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날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하 대원은 남편이 사라지기 얼마 전에 동네의 수의사로부터 짜증 섞인 전화를 받았다. 왠 남자가 다 죽어 가는 유기견을 데려와 살려 내라고 우기는데 지나치면 고발하겠다는 협박성 통보였다. 헐레벌떡 달려간 동물 병원에서 남편은 섬뜩한 눈빛으로 말이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의안을 박은 듯 냉랭한 동공. 하 대원은 그 눈을 응시할 때면 빙벽에 마주선 듯한 막막함을 느꼈다. 광기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빛으로 남편은 말했다.

“저 앞 건널목에서 차에 치인 이 어린 개를 발견했어.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졌지만 숨 쉬고 있었어. 여기에 데려오자마자 숨을 거두었는데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었어. 누군가 조금만 일찍 손을 내밀었다면,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같이 하지 않았어. 아니, 할 수 없었겠지. 자신의 처지도 다급하니까.” 
그날도 창밖에서 눈이 흩날렸다.
하 대원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어떤 말로도 위로 받지 못하리라. 둘은 개를 묻을 만한 장소를 찾아 인근 야산을 쏘다녔다. 눈발이 굵어지고 귀가 얼얼할 정도로 바람이 매서웠다. 남편은 나무가 밑동까지 뽑힌 구렁에 사체를 묻더니 잔뜩 술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침몰하는 고속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 수병의 이야기였다.

“그 애가 일곱 살이던 어느 가을날 우리 둘이서 앞산에 밤을 따러 갔었어. 한데 그만 길을 잃고 깊은 산골에서 날을 지새워야 했지. 사위는 깜깜하고, 수시로 산짐승이 바스락대고, 날은 춥고……. 나는 좀체 잠들 수 없었어. 그런데 그 애는 내 품에서 잘도 자는 것이야. 수면 중에도 내 손은 꼭 잡고서 말이야. 다음 날 깨어났을 때 물어보았지, 무섭지 않았냐고. 그 애의 답변이 좀 황당했어. 형 손을 잡고 자는데 뭐가 무서워? 형이 내 손을 안 놓을 줄 아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 배시시 웃는 애를 보면서 난 결심했지. 그래, 네 손을 결코 놓지 않을게.”

남편은 술김에, 내밀히 간직했던 비밀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한데…… 나였어. 손을 놓은 사람은 그 애가 아니라, 바로 나였단 말이야!”
함박눈이 무덤을 하얗게 덮었다.
“요즘 나는 괴상한 악몽에 시달려. 꿈속에서 내가 가면을 쓴 남자를 짓밟는데…… 그 가면을 벗긴 순간 악! 소리 지르며 깨어나곤 해. 얼굴이 피투성이인 남자는 바로 나 자신이거든.”
남편은 만취한 탓인지 황당한 말을 늘어놓았다.
“극지의 어느 마을 주민들은 해가 안 뜨는 극야의 기간에 해안가에 누워 어둠의 요정을 기다린대. 오로라가 하늘에 수놓은 순백의 요정은 너무나 순수해서 그와 손을 잡으면 마음의 병까지 없어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를 만나면 영혼이 깨끗해질까?”

그때 하 대원은 바보 같은 말을 주절대는 남편이 한심하면서도 가여웠다. 정령 따위의 허무맹랑한 존재는 과학자의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환상일지라도 그가 치유될 수 있다면 극지에 데려가고 싶었다. 그의 심연을 좀먹는 응어리를 없앨 수만 있다면, 엉망이 된 신혼을 제자리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할까.

거센 눈발이 남편의 모자를, 어깨를, 무릎을 소담스럽게 덮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눈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핏 보면 그 형상이 극지의 해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원주민 같기도 했다. 남편도 그처럼 생각됐는지 그 요정을 맞이하듯 허공에 손을 내뻗었다. 하 대원은 차마 그것을 부여잡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놓을까 두려워서.

그러고 나서 이주일쯤 지나 남편은 온다 간다 말없이 집을 떠났다. 사무실에서 회식이 있어 좀 늦게 퇴근했는데 옷장과 책상에 있던 그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주변에 수소문해 봐도 행선지를 아는 사람이 없어 무턱대고 기다릴 수밖에. 한 달쯤 지나자 소식이 궁금해 가만 있을 수 없었다. 험한 산등성이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환영이, 어느 어촌에서 고깃배를 타는 상상이 맴돌았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거나 심부름센터에 의뢰할까 고민하다가 피곤에 지쳐 까무룩 잠드는 날이 늘어 갔다.

두어 달쯤 지나자 거리를 걸을 때면 습관적으로 남편을 닮은 사람을 찾았다. 공휴일에는 혹여 그이와 마주칠까 봐 연애 시절에 함께 다녔던 장소를 배회했다. 커피숍에 앉아 있거나, 제과점에서 빵을 사거나, 공원에서 달리기하는 남자가 있으면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남편은 목덜미를 주무르며 걷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런 남자가 의외로 많았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뒷모습이 꼭 닮은 남성을 발견해 뒤쫓아 갔다가 지각했었다. 산동네 길을 오르는데 그는 그런 지형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경보 경기하듯 빨리 걸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산꼭대기에 다다라서야 그가 향했던 건물에 들어섰는데 무슨 종교 단체에서 만든 노숙자 재활원 같았다. 그날따라 동료가 선물한, 가슴이 파이고 기장이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술에 찌들거나 잠이 덜 깬 중년 남성들의, 끈적대는 시선이 전신을 훑고 다녔다. 땀이 범벅이 돼 산길을 내려오는데 내 신세가 이게 뭔가, 짜증도 나고 눈물도 글썽였다.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는데 주근깨가 가무스름히 핀, 작은 얼굴이 부쩍 야위었다. 자신의 삶이 서른세 살에서 정지된 듯해 서글퍼졌다. 그런 나날이 일 년쯤 계속되자 홀로 나뒹구는 밤을 견딜 수 없어 남극 기지의 월동 연구대에 자원했다. 일에 미쳐 남편을 좀 잊어 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얼마쯤 고무보트에 엎드려 있었을까? 꾸루, 꾸루룩. 낯익은 휘파람 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순돌이다! 오랫동안 친해지다 보니 이제는 발성만으로 다른 돌고래와 구별이 가능했다. 구경꾼에게는 똑같이 들리는 휘파람도 오래 듣다 보면 음색이 달랐다, 연인끼리 속삭임이 그러하듯이. 돌고래의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정 대원은 각각의 휘파람을 녹음해 수중 스피커로 재생했는데 그것들은 자기 음향에만 반응했었다.
동물도 장기간 함께 기거해 보면 가족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하 대원도 미혼 시절에 기르던 애완견과 그런 추억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인류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온 개들은 사람과 교감하는 모양이었다. 속세에 길들여진 개는 무서울 만큼 주인의 습성을 읽었다. 자명종이 꺼진 날에는 아침에 두드려 깨웠고 노곤해 쓰러져 잠들면 양말을 물어 벗겼다. 조깅 차림으로 갈아입으면 산책을 눈치 채고 낑낑거렸고 밤늦게 귀가하면 문 입구에서 서성대기 일쑤였다. 하 대원은 그 개를 임종 때까지 지켜보았다. 치매 증세를 보여 가끔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짖었는데 똥오줌은 잘 가려 그렁저렁 버틸 만했다. 주위에서는 노환인 개를 안락사 시키라고 권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락사 주사를 맞힐까 여러 차례 고민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던 개의 눈망울이 어른거렸다. 개가 막상 사라지면 그 끈끈한 눈길이 그리워질까 두려워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곁에 두었다.

순돌이도 그 개처럼 아홉 달 동안 흠뻑 정들었다. 지구상에서 자기와 타자를 구분할 줄 아는 생명체는 인간, 원숭이, 돌고래뿐이다. 그들은 타자의 행동을 이해하는 신경세포인 거울뉴런을 지니고 태어난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이 따라 우는 것도 공감을 유발하는 그 세포 덕분이다. 그 DNA를 가지고 태어나는 돌고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본다. 그 세포가 없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자기 얼굴을 보고도 누군지 모른다.

미미하나마 감성 유전자를 가진 탓인지 처음에 순돌이는 예민했었다. 자폐 증세가 두렷해 정 대원이 한동안 애먹었다. 자기 무리와 안 어울리는 것으로 보아 타자를 경계하는 습성이 든 듯싶었다. 범고래 같은 포식자에게 물려 반으로 토막 난 어미를 목격했는지도 몰랐다. 그런 경우 거울뉴런을 지닌 돌고래 정도면 충분히 충격과 자폐가 가능하다. 정 대원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점점 경계를 허물더니 주파수가 일치하는 하 대원에게는 어리광까지 부리곤 했다.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품에 안기려는 시늉도 했고 여성의 미끈한 팔에 주둥이를 비비는 스킨십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헤어진 가족이 그리워 이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어느 때부터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모성의 느낌까지 들었고 남극 기지에 오래 근무하면서 순돌이를 돌보고 싶다는, 엉뚱한 소망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책상에 놓인 마스코트도 돌고래 인형으로 바뀌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것을 선물하면 그 물고기가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전설이 있다.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청혼을 거절하고 해저 궁전에 숨어 버렸다. 포세이돈의 부탁을 받은 돌고래는 심해를 뒤져 여왕을 찾아내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 포세이돈은 고마움의 표시로 그 물고기를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 남편이 돌아오면 남극 기지의 동료가 심심풀이로 만든 그 인형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냉동된 남편의 심장을 쇄빙해 그 속에 갇힌 사랑을 녹일지 모르니까.
돌이켜 보면 손을 놓아 버린 사람은 바로 하 대원 자신이 아닐까. 남편은 끝까지 내 손을 붙잡고 싶었을지 몰라……. 응석을 부리는 순돌이를 보면서 하 대원은 상념에 잠겼다.

“얼마나 더 걸려요?”
뒤에서 보트를 조종하는 승무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또다시 바다가 얼음판이 될지 모를 판국에 돌고래와 장난이나 치는 연구원이 한심했던 모양이었다. 하 대원은 얼른 수중 카메라가 부착된 밴드를 순돌이의 머리에 감았다. 그 일이 끝나면 고소한 오징어가 주어지는 것을 아는 돌고래는 군말 없이 촬영 장비에 몸을 내맡겼다.

승무원이 무전기로 신호를 보내자 주파수변조기와 수중 플래시를 장착한 크레인 줄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 대원 역시 손에서 순돌이를 놓아 주었다. 어서 내려가서 네 언니나 다름없는 선아를 찾아야 해, 어서 가. 왈칵 눈언저리가 뜨거워졌다. 캄캄한 먹장 속에서 삼사 일을 버텼으니…… 그대로 영영 잠들어야 할지 모르고……. 승무원 손에 이끌려 트랩을 오르면서도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야비한 바람이, 선측에서 대롱대는 여자를 마음껏 유린했다.
 

수중 카메라에 잡힌 바닷속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반딧불이같이 발광하는 생물이 빛을 뿌리며 스쳐 갔다. 푸르스름하게 명멸하는 생명체를 보고 있자면 천체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관찰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삐리, 삐리리. 음파탐지기에서는 돌고래의 휘파람이 피리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암순응 탓에 처음에는 어두웠던 해저가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하 대원의 마음을 헤집었다.

바다의 여제로 불리는 해양생물학자, 실비아 얼은 항구에서 태어나 자란 하 대원의 롤모델이었다. 그녀는 7천 시간을 대양에서 보냈고, 혹등고래를 직접 만지며 연구했으며, 해저 4백 미터까지 내려가 샘플을 채취했다. 얼은 강연 때마다 청중에게 “우리는 심해에 대해 달보다 아는 게 없어요, 정말 신비로운 세계는 머나먼 은하가 아니라 우리 곁의 해저랍니다.” 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녀의 책을 읽은 뒤부터 하 대원의 관심은 애오라지 해양이었다. 바다의 내음에 끌린 탓에 남편까지 해군 장교를 택했을지 모르고. 

한데 해양은 걸핏하면 죽음의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생존 한계의 임계점이라는 극지는 더욱 그랬다. 몇 년 전에도 기지의 젊은 대원이 귀국하려 고무보트를 타고 비행장으로 향하다 빙해에 빠져 죽었다. 한국의 해안이었으면 살아났을 터인데 남극에서는 10분 이상 바닷물에 몸을 적시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그런 소식이 들리면 지인들은 안전한 육지에서 연구원으로 머물라고 권했다. 그래도 하 대원은 대양으로 향하는 시선을 멈출 수 없었다. 낯선 심해어의 사진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여행지처럼 그녀를 설레게 했다. 그 미지의 세계에 자신이 찾는, 자신을 기다리는 뭔가가 있다는 상상만 해도 첫 키스의 순간처럼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수중 카메라가 비춘, 푸른 염료로 염색한 듯한 바닷속 때문이었을까. 하 대원은 문득 후배가 해류를 타고 남태평양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 빠졌다. 그녀는 여름휴가 때는 사이판의 어느 이름 없는 섬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종일 햇볕을 쬐겠다고 말했다. 수시로 여행사의 안내장에 쓰인 시를 암송하면서 함께 가자고 꼬드겼다…… 오래전에 이 섬은 열락으로 넘쳤답니다. 무리 지어 노래하는 희열로 가득했지요. 너울거리는 파도에 실려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다녀 보세요. 따끔한 햇살에 뼈마디가 녹는답니다. 하지만 해초의 향기에 취하지는 말아요. 당신은 잠들어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연둣빛으로 변해 가는 모니터 화면을 향해 하 대원은 한 손을 하느작거렸다. 살아 만 있다면 여행에 동행하겠다는 허락의 표시로. 손등에 새겨진 돛단배 문신이 바람을 맞아 펄럭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하 대원은 여전히 푸른 물결로 넘실대는 남태평양의 어느 해변을 연상하는지 몰랐다. 그녀의 환각을 깨우듯 누군가 소리쳤다.
“불빛이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모니터로 향했다. 창 너머로 기중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탐사대장도 후다닥 달려왔다. 순돌이의 주둥이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가 저 아래서 반짝대는 섬광을 포착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해저의 바닥에서 내쏘는 불빛 같았다. 카메라는 뱀장어가 미끄러지듯 율동하면서 그 빛에 접근하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인공적인 기구에서 발산하는 조명 같았다. 순돌이가 요동칠 때마다 눈앞에서 발광체가 희번덕거렸고 화면이 점묘법으로 점을 찍어 그린 화폭 같아 보였다. 해저는 암흑 상태이므로 잠수정에는 밖을 밝히는 투광기가 설치돼 있었다. 정 대원이 순돌이의 카메라 플래시를 본다면 투광기를 비출지 몰랐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저 빛은 선아의 신호여야 해!
하 대원은 간절히 빌었다. 그 기도에 답하듯 순돌이의 카메라가 순식간에 의문의 발광체에 다가섰다.
저것은…… 310?
얼핏 무슨 숫자를 읽었다고 느낀 순간 화면을 바짝 들여다보던 대원이 외쳤다.
“그 잠수정이다, 310호가 분명해!”
와!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믿기지 않는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꿈같은 일이었다. 크레인이 줄을 내리는 내내 설마, 설마 하던 탐사대장도 어린애같이 기뻐 날뛰었다. 여기저기서 정 선아를 부르는 외침이 연이었다.

내압실을 환히 밝힌 잠수정 안의 물체가, 아홉 달이나 사귄 정 대원인지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순돌이의 카메라가 가만 멈춰 유리창을 비추었다. 정 대원이 기기를 급히 조작하는 듯 로봇팔이 물속에서 휘적거렸다. 생명줄을 잡으려는 필사의 몸짓이 아닐까. 대장이 무전기에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면서 와이어로프에 매단 봉이 잠수정에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마침내 크레인 끝에 부착된 수중 카메라에도 잠수정이 포착됐다. 로봇팔이 기다란 봉을 움켜쥐려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두 개의 로봇팔이 봉을 붙잡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누군가 무전기에 대고 고함지르고…… 로프가 팽팽해졌다고 느낀 순간.

“언니, 선아가 올라와!”
눈물로 뒤범벅된 혜수가 소리 질렀다. 잠수정이 바닥에서 튕겨 올라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해조류가 퇴적된 개펄에 박히지 않았을까. 물 위로 부상하려면 기기를 조작해 아래쪽에 부착된 부력재를 버려야 하는데 그 기능에 장애가 있었던 듯싶었다. 일단 퇴적층을 벗어난 잠수정은 제 기능을 되찾았다. 흰 추가 떨어져 나가더니 기중기가 더 이상 당길 필요도 없었다. 본디 성미가 좀 급한 정 대원이었다. 부력재를 떨어뜨린 잠수정이 로프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눈물에, 아우성에, 주변이 온통 환호의 도가니였다.

허공이 제멋대로 도는 것 같아서, 두 다리가 허물어질 것 같아서 하 대원은 창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 영하의 바람은 빙점을 낮추지 않고 악착스레 바다를 얼리고 있었다. 냉동된 빙해는 돌이킬 수 없는 시신같이 미동도 없었다. 희뿌옇게 김이 서린 창에 자신의 얼굴이 어슴푸레 드러났다. 어느새 다가온, 도덕과 양심의 중압감으로 일그러진 남편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졌다.

『쇄빙.』
하 대원은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힘주어 글씨를 써 내려갔다. 손가락의 열기 탓에 성에에 새겨진 글자가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이것으로 그 수병에게 진 남편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으면……. 하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눈앞이 환해지도록 밝았던, 연애 시절의 남편의 미소가 유리창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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