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조조정 압박 속 대규모 실직, 업계통폐합설 대두

 
 




국내 조선업계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있다. 1분기 수주실적이 단 9척에 그치며 15년만에 최저 실적을 보였고, 시황침체로 앞으로의 수주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그나마 성사된 계약마저 경기불황으로 취소·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물론 업체간 통폐합까지 거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 두회사 없애는 구조조정이 아닌 산업 전체를 살릴 수 있는 방향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올 1분기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실적이 단 9척에 그쳤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실적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포함)이 5척, 현대미포조선 1척, 연수중공업 3척이 전부로, 분기별 수주량 기준 2001년 4분기 9척 수주에 이어 15년만에 최저 수주를 기록하게 됐다.


국내 조선업계의 올해 첫 수주는 2월에야 시작됐다. 현대미포조선이 호주 ASP그룹과 5만dwt급 제품운반선(MR탱커) 1척을 수주했으며, 그 뒤를 이어 현대중공업은 터키 Ditas Shipping으로부터 15만 8,000dwt급 유조선(LR3) 2척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어 쿠웨이트 선사인 AMPTC(Arab Maritime Petroleum Transport)로부터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2척을 수주했고, 최근 초대형가스운반선VLGC 1척을 수주했다.

1분기 수주량 총 9척 현대重 5척, 삼성·대우는 전무
중국은 전년대비 수주실적 9% 상승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는 물론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대선조선 등 중대형 조선사의 1분기 수주소식이 전무한 가운데, 소형 조선사인 연수중공업이 석유화학제품선 3척을 수주해 관심을 끌었다. 연수중공업은 예인선을 주로 건조하던 소형 조선사로 지난해 세코중공업을 인수하며 상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번 계약은 국내 해운사인 우림해운과의 계약으로 6,600dwt급 석유화학제품선 총 3척을 2017년까지 인도해야 하며, 옵션 1척에 대한 계약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클락슨Clarkson 월간 리포트에 따르면, 올 3월까지 한국 조선사의 수주량은 70만dwt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92% 급감한 실적이다.


반면 중국은 같은기간 820만dwt를 수주해 전년대비 9% 수주실적이 반등했다. 외신에 따르면, 차이나머천트(China Merchants), 차이나코스코시핑(CCSC), ICBC Leasing은 각각 10척씩 총 30척의 발레막스 선박을 자국 조선사에 발주했다. 발주된 선박은 40만dwt 규모로 2018년부터 차례로 인도받을 예정이며 선가는 척당 약 8,500만불로 예상되고 있다. 이들 선박들은 인도되는 대로 브라질-중국간 철강 무역항로에 투입될 예정이다.
 

일본 조선업계는 1분기 총 60만dwt를 수주하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의 수주실적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극심한 수주부진 속 올초 세운 수주목표 달성 어려울 듯
자국선사 발주를 통한 중국 조선사들의 성장이 눈에 띄는 반면 한국,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조선업계는 극심한 수주부진을 겪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를 이끌고 있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이른바 ‘조선 빅3’는 올 초 총 400억불에 달하는 수주목표를 세웠으나 1분기가 지난 현재 겨우 1%대의 달성률을 보이고 있어 목표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1분기가 지난 현재 현대중공업의 수주목표 달성률은 불과 3%로 남은 9개월간 매달 18억 달러를 수주해야 167억 달러로 정한 올해 목표달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나마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를 개시했다는 점이 다행이다. 수주목표를 108억불로 정한 대우조선과 125억불로 목표를 세운 삼성중공업은 아직까지 첫 수주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삼성, 기존 해양플랜트 계약 해지 위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한 분기동안 동시에 수주를 못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들 조선 야드가 위치한 거제 지역은 인력 구조조정 등이 진행되며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양사 직원이 3만여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3개월째 수주가 없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45억불을 수주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08억불의 수주목표를 세웠다. 적극적인 수주보다는 수익성과 경영정상화에 주력하겠다는 동사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100억불의 수주목표는 현실적으로 조선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목표였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수주를 주력으로 125억불의 수주목표를 세웠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오일메이저 쉘Shell로부터 수주한 3척의 LNG-FPSO에 대한 추가수주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은 추가 수주는 커녕 기존 계약마저 취소될 위기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덴마크 DONG E&P A/S사는 대우조선과 프랑스 테크니프 컨소시엄에 발주했던 원유 생산용 해양플랫폼 계약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계약금액은 5억 6,000만불로 동 계약을 통한 대우조선의 계약금액은 2억불에 달한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쉘로부터 수주한 47억불 규모의 부유식 FLNG 계약도 취소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 측은 조건부 계약이었던 만큼 셸로부터 확인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예정됐던 70억불 규모의 수주건이 보류되면서 125억 달러로 정한 수주목표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벌크선, 컨선, 가스선 모두 침체
해체량 늘지만 인도량도 늘어 공급과잉 여전

이처럼 해양플랜트 시장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수주를 이끌었던 상선시장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크선의 경우 공급과잉 심화로 작년부터 수주의 맥이 끊긴 상황이며, 작년 대량 발주됐던 컨테이너선과 가스선도 올해는 침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 한해 벌크선을 포함한 상선의 폐선량이 사상 최대수준으로 상승해 어느정도의 공급과잉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당장 신조발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클락슨에 따르면, 벌크선의 경우 올 2월까지 약 100여척이 폐선됐으나 신조 발주된 선박은 4척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연간 폐선량이 인도량을 넘어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컨테이너 시장도 해체와 계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올 3월까지 누적된 컨테이너선 해체량은 약 9만teu로, 올 한해 약 40만teu의 선박이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항만에 정박돼 있는 계선규모도 157만teu로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점인 2009년의 152만teu를 넘어선 수치이다. 반면 올해까지 인도될 컨선은 약 125만teu로 해체·계선으로 인한 공급과잉 해소도 낙관할 수 없다.


지난해 대량 발주됐던 가스선 시장도 셰일가스 수출로 인한 기대와는 달리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LPG선의 경우 내년까지 이미 상당한 규모의 선박이 인도될 예정으로 공급과잉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된 LPG선은 총 220만gt이며, 올해 인도량은 290만gt로 작년 수준을 넘어선다. 2000년 이후 연간 LPG선 인도량이 200만gt를 넘긴적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를 넘던 시기에는 미국 셰일가스 수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현재는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예상만큼 LNG나 LPG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고 있어 VLGC의 재매각Resale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 인력구조조정 진행 중
정부 구조조정 압박 속 대규모 실직, 업계통폐합 소문

최악의 상황 속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인력 구조조정 등 ‘제살 도려내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주도의 ‘조선업 통폐합설’까지 나오는 등 업계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각 업체 자체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에 압박을 가함에 따라 ‘대규모 실직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정규직 인력은 물론이고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협력업체들도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해양플랜트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업체들이 인력을 감축하고 있고 몇몇 곳은 폐업하기도 했다. 거제 지역에서 조선소 인력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사업자는 “많은 노동자들이 올 상반기 이후 일감이 급격하게 줄어 공장 밖으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처해있다”면서,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조선업에 종사한다면 은행권에 대출도 잘 이뤄지지 않아 직원 임금도 제대로 못주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산업 구조조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4월 15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정부가 액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19일 구조조정협의체 실무회의를 통해 조선, 해운 산업을 5대 취약업종으로 선정하는 등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대우 합병설, 중소조선 업종전환설 ‘뒤숭숭’
“자국 선박 수주하는 중국 조선정책 본받아야”

이미 금융권에서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설이 모락모락 피어나오고 있다. 양 사의 야드가 거제시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드릴십, FPSO, FLNG 등 양사의 주력사업이 비슷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간 합병설은 과거에도 위기시마다 나왔던 소문이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서도, “조선, 해운산업 등이 전에 없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시황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전향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언론들은 양 조선사의 합병에 대해 정부·금융계의 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주시하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글로벌 조선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특히 지난해부터 나타난 사상 최대의 영업적자와 최악의 수주여건 속에서 기업 인수·합병이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또한 방산사업을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쉽게 삼성중공업이 인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조선업 관계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당시 그룹간 합병임에도 불구하고 주주 반대로 무산됐고, 성동조선해양을 떠안은 삼성중공업이 조단위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합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대형 조선사 구조조정과 함께 중소 조선사들도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대한조선, 대선조선 등 국내 중견 조선사들도 올 1분기 단 한척의 선박을 수주하지 못했기에 구조조정에 따른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형 조선사간 합병설과 함께 중소조선사들의 업종 전환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 나오고 있다.
대형 조선 3사의 합병설과 맞물려 중견조선소의 업종 전환 등의 시나리오가 제기돼왔다. 대형 조선소의 경우 자체적인 태세 정비를 예고한 만큼 사실상 정부의 구조조정안이 중견조선소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발 구조조정설에 여전히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단지 조선소 몇 곳을 없애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내 조선업 전체를 살릴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수주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 조선사는 자국 물량을 수주하면서 일감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경쟁국보다 앞선 인지도와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대부분 해외 수주에만 의존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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