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법정에서는 전문심리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선박충돌 손해배상청구사건의 심리가 열렸다. 이는 지난 6월 20일 국회 본회를 통과하고 8월 14일 공포된 개정 민사소송법에 전문심리위원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소송절차중의 조정절차에는 조정위원으로서 해상전문가들의 참여가 자주 있어 왔지만 이번처럼 법정에서 전문심리위원의 자격으로 재판에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사고원인을 제대로 규명해보겠다는 법원의 의지에서 그리된 것일 것이다.


이날 참석한 전문심리위원은 판사의 용어의 의미에 관한 질문에 설명하기도 하고 양 당사자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양 당사자로부터 질문을 받아 이에 대한 의견을 법정에서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다시 나중에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전문심리위원제도가 해상사건에 도입된 것과 관련하여 어느 신문은 “전문심리위원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그 동안 업계에서 낮게 평가해온 우리 법원의 해상사건에 대한 전문성이 크게 보강되고 이를 계기로 많은 해상사건이 외국법정이 아닌 우리 법원을 찾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보도하였다. 필자는 한편으로는 이 제도가 잘 정착되어 법원의 전문성이 보강되기를 기원하면서도 이 제도가 가져올지도 모를 해양사고의 원인규명과 관련한 문제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막 제도가 시행된 것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예방되어야 한다는 충심에서 동 제도가 미칠 영향과 바람직한 제도운영에 관한 논의를 서둘러 제안하기로 하였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지적재산권, 건축, 의료, 환경 등 전문적인 분야의 사건에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하여 소송절차에서 설명 또는 의견을 진술하도록 함으로써 법관이 전문가의 조력을 받게 하는 제도로서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첨단산업분야, 지적재산권, 국제금융 기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법원 외부의 관련분야 전문가를 당사자의 신청이나 법원의 직권으로 소송절차에 참여시켜 전문적인 지식에 의거한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하도록 하여 재판의 전문성을 보완함으로써 재판절차를 보다 충실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여기서 전문심리위원은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항에 관하여 설명 또는 의견을 진술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기일에서 당사자나 증인 등에게 직접 질문할 수도 있다. 전문심리위원은 선서를 하지 않으며 그의 의견은 감정인의 감정자료와는 달리 증거자료가 아닌 참고자료이며, 전문심리위원은 특허법원의 기술심리관과는 달리 재판의 합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대법원은 전문심리위원 후보를 어떻게 정하는가와 관련하여 전문심리위원 규칙을 두고 있는데, 법원행정처장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중에서 정하되 국가기관이나 교육기관 등에 추천을 의뢰할 수 있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자격기준은 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해양안전심판은 해양사고에 대한 조사 및 심판을 통하여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해양안전의 확보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심판은 조사관의 청구에 의해 개시되고 심판장, 심판관, 조사관은 독립적으로 심판에 임하며 심판부는 지방심판의 경우, 심판관 3인의 합의체로 중앙심판은 심판관 5인 이상의 합의체로 구성하되 구성 심판관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또 해양사고 관련자나 이해관계인은 심판변론인을 선임할 수 있고, 심판원은 직권으로 필요한 증거를 조사할 수 있다. 감정이나 증인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고, 원인규명이 특히 곤란한 사건에는 비상임심판관을 위촉할 수 있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심판부를 구성할 수도 있고, 사실의 인정에 있어서 증거재판주의와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지방심판의 재결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중앙심판원에, 중앙심판의 재결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대법원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대법원에 소가 제기되었을 때에는 피고는 중앙심판원장이 된다.


위와 같이 해양안전심판의 절차는 3심을 거칠 수 있게 되어 있고, 조사관과 심판관이 독립되어 있으며 이해당사자는 심판변론인을 선임할 수 있고, 심판부는 합의체이며, 각 참여자가 전문가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사고 원인규명을 위해 매우 충실한 절차로 구성되어 있는 바,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은 그 권위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중앙심판원의 재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이의를 신청하는 경우 대법원은 사실심리를 아니 하고 법률심리만 한다는 주장이 간혹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지는 대법원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줄곧 원인규명재결의 사실인정과 법령의 적용을 다툴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실제로 중앙심판이 재결한 원인을 부정하고 이를 취소한 사례가 있었음을 볼 때 대법원이 사실심리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해양안전심판의 절차와 성격을 고려할 때 당사자들은 심판에 임함에 있어 심판변론인을 통해 충분히 변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원의 재결에 불복할 경우에는 주어진 절차에 따라 중앙심판원이나 대법원에 이의를 신청하고 그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이 절차를 취함이 없이 민사소송에서 다시 원인에 관한 다툼을 하는 것은 권리남용적인 면이 있다.


그 동안에는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민사소송에서 많이 인용되었고 필요한 경우 조정절차에서 3인의 조정위원인 해상전문가가 조정에 임하기도 했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만일 민사소송에서 해양사고의 원인을 당사자의 주장이나 전문심리위원의 진술을 바탕으로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에 근거함이 없이 다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라는 문제 자체에 상당한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또한 해양안전심판의 안정성에예기치 않은 영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양사고라는 것이 육지사고와는 달리 증거가 충분히 보전되어 있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민사재판은 변론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양 당사자가 상호 입증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직권으로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해양안전심판에 비해 진실규명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혹시 일반 민사재판에서 보다 법원의 직권이 많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해양사고의 전문가가 아닌 법관에게 그 직권을 이용하여 증거가 있을만한 곳을 충분히 조사를 행할 만큼 전문성이 있다고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에 민사재판에서의 해양사고의 원인규명은 애초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만일 민사법원이 해양안전심판원과 다른 결론을 내게 된다면 이는 당사자의 승복여부를 떠나 해양안전심판원의 위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뿐만 아니라 향후 해양안전심판원의 사고원인규명 능력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민사소송에서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인용되지 아니하고 다시 원인규명 작업을 한다거나 그래서 해양안전심판의 재결이 번복된다면 그 동안 이해관계자로서 직접 또는 선원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해양안전심판절차에 참여하여 사고원인규명을 위해 노력하던 해운회사나 보험회사는 어차피 민사소송에 가면 다시 다투어질 것이니 해양안전심판은 선원에게 맡겨두고 그래서 심판변론인을 회사의 비용으로 선임할 필요도 없이 동 심판절차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고원인규명을 위해 만반의 증거를 확보하고자 이해관계자의 심판절차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해양안전심판은 증거 확보력에 손상을 입게 되어 심한 경우에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 실패할 수도 있고, 만일 이해관계자가 소송전략상 민사소송에 와서야 중요한 증거를 제출하여 해양안전심판 결과가 민사소송에서 뒤집어지기라도 한다면 해양안전심판원의 위상은 또 한번 추락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으며, 해양안전심판을 통해 징계받은 선원은 민사소송에서 사고원인이 뒤집어졌을 때는 이미 징계가 이행되었거나 재결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을 터이므로 실체적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억울함에 잠못이룰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 절실한 대형사고의 경우에 더욱 커질 수 있다.


또한 해양안전심판절차에 따라 대법원에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이 피고가 되므로 심판원은 자신의 재결에 대한 공격에 대해 소명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반해, 민사소송에서 해양안전심판원의 참여없이 당사자와 전문심리위원의 주장만으로 심판원의 재결이 번복된다면 이는 심판원이 또한 억울해할 일이다. 더군다나 합의체 심판원이 오랜 조사와 심문 끝에 전문가들이 합의하여 결론 낸 바를 단독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들어 번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할 것이다.


해양안전심판원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민사소송에서 심판원의 참여없이 심판원의 재결이 번복될 수 있는 절차의 도입이나 시행은 충분히 주의해서 할 일이다.
일본의 민사소송절차에도 2004년 4월 1일부터 전문위원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해상사건과 관련하여 민사법정에서 전문위원이 진술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1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왜 활성화되지 못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굳이 민사법원이 해상사건에 있어서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성화 할 생각이라면, 법원의 재판은 법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정신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전문심리위원은 특허법원에서의 기술심리관과 같이 기술적인 사항에 관하여 소송관계인에게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진술하도록 그 역할이 제한되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전문심리위원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나노기술이 어떻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도대체 기초개념부터 재판할 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전문가가 옆에 앉아 있으면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수시로 물어봐가면서 재판을 할 수 있다. 상식에 기반한 재판이기도 하지만 전문용어를 이해하면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인 타임갭이 법정에서 바로 이루어질 수 있고” 하는 법원행정처의 설명에 전문심리위원의 역할 모델이 잘 나타나 있다.


전문심리위원의 역할에 관해 영국의 경우를 더 살펴보면, 영국의 민사법원은 해상충돌사고의 경우 여러 명의 Nautical Assessor를 심리에 부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영국법정에서 판사가 Nautical Assessor에게 질문하는 것은 항해기술과 Seamanship(선원상무; 선원정신)에 관한 것이지 “이번 사건에는 무슨 항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거요” 라는 식의 포괄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아래의 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우리도 이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The Avance 사건을 보면, 판사는 선장이 1분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과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상대선 Bambara호가 앞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처음 보고나서 당시상황에서 Avance호 선장이 상대선이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심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인가” “그래서 Avance호 선장이 상대선이 계속 앞으로 갈 것인지 결론을 내고, 피항동작으로써 기관을 정지하거나 역회전시킬 것인지 결론을 내기 전에 1분간 기다리는 것은 Good Seamanship에 반하는 것인가” 라고 질문하고, 이에 Nautical Assessor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Yes” 라고 답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No. 그러나 1분 이상 기다린다면 잘못한 일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또, The Statue of Liberty 사건에서 Nautical Assessor는 “첫째, 당시 상황에서 Andulo호의 항해등은 7마일 전부터 보였을 것이고, 5마일전에는 이를 감지했어야 했다. 둘째, 상대선이 가까워지면 콤파스를 이용하여 상대선 항해등의 방위를 측정했어야 했다.” 라고 판사에게 항해기술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The Judith M 사건에서 Brandon 판사는 “양측의 여러 가지 이전 과실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Seamanlike Action 인가 하는 Good Seamanship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것이 Nautical Assessor의 역할”이라고 설시하고 있다.


영국의 The Schedule to the Merchant Shipping(Formal Investigations) Rules, 1985는 Nautical Assessor의 자격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상선선장의 경우 ① 1급항해사(갑종선장) 자격을 보유하고 영국국적의 선박에서 2년 이상 선장으로 승선했을 것 ② 모든 최근의 항해계기에 대해서 정통할 것 ③ 70세 미만일 것 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상선선장이외에도 상선기관장, 어선선장, 해군, 조선기사 등에 대해서도 각각 자격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운영과 관련하여 참조할 일이다.


한편, 전문심리위원 제도의 도입과 관련하여 법무부차관은 법관이 공부를 게을리해서 재판이 전문심리위원에게 휘둘려질까 우려한다고 했고, 전문심리위원의 역할은 보조적 참고적으로 필요한 때에 한해서 아주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국회의 법제사법소위원회도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Nautical Assessor제도를 시행하고 있던 19세기 영국의 해사법정에서도 법관이 Nautical Assessor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The Beryl 사건에서 Baliol Brett 판사는 Assessor 제도의 목적은 항해술(Nautical Skill)과 같은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판사를 돕기 위한 것이지 판결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판결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며, 판결과 관련하여 아무런 할 일도 없다면서 판사가 Nautical Assessor에게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감정서나 사실조회 회보는 그 자체가 기록에 편철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를 충분히 탄핵할 수 있으나, 전문심리위원의 경우는 실제로는 판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의 기일에서의 진술 등에 대하여는 충분한 탄핵의 기회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대한변호사협회도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판사는 전문심리위원이 모든 증거와 모든 상황설명을 제공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위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로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민사소송에서의 전문심리위원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사고 원인규명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자는 심판제도의 목적에 맞게 원인규명 기능을 강화하고 원인규명이후 재발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심판원 역할의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결의 부차적 효과에 까지 염려를 더하여 조속한 사건처리에 도움을 주고자 과실비율을 적시해주는 일 등은 가급적 자제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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