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
박영선 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

1. 들어가며
필자는 지난 9월 3일부터 6일까지 홍콩에서 개최된 제17차 아시아태평양지역 항만국통제위원회(Tokyo MOU)의 의장을 마지막으로 임기 3년의 의장역할을 마쳤다. 

 

얼떨결에 의장직을 수락한 2005년 태국 방콕에서의 제15차 위원회, 약간 업무에 익숙해졌던 2006년 캐나다 빅토리아에서의 의장역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일단 의장의 임기를 마치니 시원하기도 하고, 이제 다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 섭섭하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순환보직의 원칙에 따라 수시로 이동하는 우리나라 공무원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중도하차하는 불상사가 없이 무사히 3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국제무대에 등장한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1970년대 이후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서서히 얼굴을 비치기 시작하여 점차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2007년에는 한국인이 최초로 유엔사무총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갈 길은 아직 멀다. 

 

경제력 기준으로 세계 11위 정도 되는 우리나라가 그에 걸맞은  외교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전문성과 국제적인 매너를 갖춘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에 있다. 그나마 이러한 소수의 인력마저도 체계적으로 육성되지 못하고 소위 '순환보직'에 의하여 이 업무, 저 업무를 번갈아 맡다 보니 해당 분야에서 경험도 일천해지고 국제적인 인맥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간의 외교관계도 결국 그 업무를 담당하는 인간간의 관계이며, 이러한 외교적 네트워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아니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된다. 
국제회의에서 의장은 회의의 전 과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회의의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참가국가가 많은 다자간 회의에서는 중요한 사안들이 의장, 사무국 및 활동적인 주요 인사들(active key players)에 의해 사전에 기획되고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회의 외적 활동을 주도하는 의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필자는 적은 국제회의이지만 의장으로서 3년간 활동하면서 국제회의의 운영체제를 직접 경험하였고, 또 막후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으며, 나름대로 한국인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이제 의장직을 떠나면서 그간 개인이 경험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특히 북한의 협력회원 가입 좌절 및 차기 의장의 선출 과정은 의장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누군가가 국제회의의 의장이 되었을 때 필자의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되고, 아울러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국제회의의 운영체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2. Tokyo MOU란?
전통적으로 선박은 움직이는 영토로 인정되어 외국의 항만에 입항해도 항만당국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러나  Torrey Cannyon, Amoco Cadiz호 등 유조선에 의한 대형 오염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연안국들은 종래의 체제를 재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즉, 연안국들은 아무리 자국선박의 오염예방에 노력해도 안전에 신경 쓰지 않는 국가에 등록된 선박들이 자국 연안에 와서 오염사고를 일으키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안국들은 자구책으로서 자국 항만에 입항한 외국선박에 승선하여 안전설비, 오염방지설비, 선원의 자격 등에 대하여 검사하고 국제기준에 미달하는 선박에 대하여는 출항정지 등의 제재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체제를 항만국통제(Port State Control: PSC)이라 한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제정된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74),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73/78), 선원의 훈련·자격 및 당직기준에 관한 국제협약(STCW 78) 등에는 PSC에 관한 근거가 도입되었으며, 1982년에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도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국제협약에 의한 항만국통제는 항만국이 단독으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유럽지역의 모든 국가가 동시에 항만국통제를 실시하면 기준미달선 퇴출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2년 1월 유럽 14개국의 장관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항만국통제에 관한 양해각서(Paris MOU)를 체결하였다.  이 Paris MOU는 같은 해 7월 1일에 발효되었으며, 1996년 7월 1일에는 항만국통제에 관한 유럽의회지침(EU Directive)이 발효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은 항만국통제의 시행이 의무화되었다.


Paris MOU가 성공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해사주관청들도 항만국통제에 관한 지역협력체제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한 제1차 준비회의는 일본의 주도로 1992년 2월 13일 일본의 Tokyo에서 개최되었다. 이후 계속적인 회의를 통하여 여건이 성숙됨에 1993년 12월 1일에는 일본의 Tokyo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항만국통제에 관한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on Port State Control in the Asia-Pacific Region」)를 체결하였다. 

 

Tokyo MOU는 16개 해사주관청의 대표가 서명하였으며, 1994년 4월 1일 발효되었다.  1994년에는 중국과 바누아투(Vanuatu)가 서명하여 2007년 9월 말 현재 서명회원국은 총 18개국이다.  Tokyo MOU의 주된 목표는 해양안전을 증진하고,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선박의 작업 및 거주상태를 감독하여 기준미달선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해사주관청은 협력을 강화하고 정보를 교환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이러한 MOU는 법적으로 강행력을 가지지 아니하고, 이 MOU는 각 해사주관청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지 않음을 명확히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도 MOU의 모든 결정은 전원합의제(consensus)로 운영되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상호 협력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준수하고 있다.


Tokyo MOU는 항만국통제위원회(PSC Committee), 사무국 및 컴퓨터정보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만국통제위원회는 Tokyo MOU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항만국통제와 관련된 각종 지침을 개발하고, 정보교환에 관한 절차 등도 정한다. 위원회는 회원당국의 대표로서 구성되며, 1년에 1회 개최된다.  위원회의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은 임기가 3년이며, 홍콩에서 열린 제17차 위원회를 마지막으로 필자는 의장직을 마치게 되었다.


사무국은 항만국통제업무에 대한 지원을 하기 위하여 상설로 운영되며, 일본의 Tokyo에 사무실이 있다.  무국은 위원회의 감독을 받으며, 일본 민법에 의한 재단법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무국의 주요 업무는 회의의 준비, 관련문서의 회람, 정보의 교환 등이며, 2007년 9월 말 현재 직원은 총 4명이다. 

 

컴퓨터정보시스템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시행된 항만국통제의 결과를 입력하여 그 정보를 회원국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처음에는 캐나다의 해안경비대에서 운영하였으나 1999년 캐나다와 러시아가 유치경쟁을 벌인 끝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두기로 결정되었다.  2006년 이 시스템은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이전되었으며, 2007년 9월의 위원회에서 그 이전이 승인되었다.


표 1 지역 PSC MOU 현황                        (출처 : 해당지역 MOU홈페이지)
표 1 지역 PSC MOU 현황                        (출처 : 해당지역 MOU홈페이지)
참고로 Paris MOU와 Tokyo MOU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총 9개의 지역 MOU가 있으며, 그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표 1>과 같다.  미국은 지역 MOU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항만국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총 10개의 지역 항만국통제체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2007년 9월의 제17차 Tokyo MOU 개회식 장면은 다음의 <그림 1>과 같다.

 

 

 

 

 

 

 

 

3. 의장업무의 수행요령
가. 회의의 준비

다른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국제회의의 의장으로 활동하기 위하여는 회의가 그간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2-3차 회의결과 보고서를 읽어 보는 것이다.  물론 지난 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의 보고서도 좋지만 이는 아무래도 내용이 우리나라에 관한 내용으로 제한되어 있다 보니 가급적 영문으로 된 원본을 읽는 것이 좋다. 

 

그림 1 Tokyo MOU 개회식 장면. 주최국인 홍콩의 Tupper씨가 개회사를 읽고 있다
그림 1 Tokyo MOU 개회식 장면. 주최국인 홍콩의 Tupper씨가 개회사를 읽고 있다


지난 회의결과보고서 내용 중 그간 계속 검토되다가 결론을 못 본 의제는 이번 회의에서 결정될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러한 의제에 대하여는 별도를 표시를 하여 이에 대한 각국의 입장 및 우리나라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좋다.  특히 각국별로 의견이 대립하는 사항에 대하여는 그 내용이 회의결과 보고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난 회의 참석자에게 해당 의제의 진행사항에 대하여 문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 의제의 사전검토
회의를 원만하게 진행하려면 의제의 내용을 숙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회의참가 전에는 사전에 제출되어 배부된 의제를 읽고 충분히 소화해야 한다. Tokyo MOU의 경우 주요 의제는 회원의 가입, 항만국통제관 지침서(PSC Manual)개정, MOU의 개정 등이 중요한 의제들이다. 

 

이런 의제들은 IMO의 활동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최근 협약개정 등 IMO의 변동사항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의장국가로서의 체면도 있으므로 그간의 진행상황을 고려하여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몇 꼭지의 의제를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식으로 의제를 제출하지 않고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 사무국과의 회의에 관한 사전협의
회의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의장은 주요의제의 처리방향에 관하여 사전에 사무국과 협의하여야 한다.  사무국은 회의에 대비하여 의장의 회의진행 요약서(Brief for the Chairman)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는  회의의 경과 및 의제에 따라 의장이 해야 할 일과 순서가 정해져 있다. 

 

이 요약서를 바탕으로 의장과 사무국은 처리방향을 최종적으로 조율하게 된다.  특히 다른 의제와 관련이 있는 의제의 경우는 통합하여 다루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소지가 있는 의제는 뒤로 미루어 여차하면 다음 회의로 미룰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협의 시에는 모든 의제를 다 검토하므로 빨라도 5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요약서의 내용과 의장이 할 행동으로서 준비한 발언문의 예는 다음의 <표 2>와 같다.  특히 발언문은 요약서의 내용에 따라 필자가 만든 것인 바, 향후 의장으로 활동할 사람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표 2 요약서의 내용과 의장 발언문 예
표 2 요약서의 내용과 의장 발언문 예

 

 

라. 회의진행의 요령
회의는 일반적으로 전원합의제(consensus)로 운영되기 때문에 의장은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의제에 따라 참석자간에 잘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의장은 중재안을 직접 도출해 내기도 하고, 작업반(working group)이나 초안작성반(drafting group)을 만들어 별도의 모임에서 타협안을 만들 수도 있다. 

 

또 회의중 계속 논란이 될 경우 토의를 휴식시간(tea time) 이후로 연기하여 이 시간을 이용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참석자(active key player라고 하기도 하고, inner circle member라고 하기도 한다) 간의 협의를 유도할 수도 있다.  특히 합의가 어려운 의제에 대하여는 참석자의 동의를 얻어 결정을 다음 회기로 연기할 수도 있다.


회원국간에 합의가 안되지만 이번 회기에 꼭 결정이 필요한 경우는 투표로 결정할 수도 있다.  투표에 의한 결정방법은 Tokyo MOU의 의사절차규정(Rules of Procedures)에 규정되어 있다. 즉, 의결정족수는 회원국 과반수의 참석에 의하며, MOU에서 특별히 정한 사항 외에는 참석자 과반수의 결정에 의한다.  이 경우 참석하였으나 투표에서 기권(abstaining)하는 회원국은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또 의사절차규정과 MOU 규정이 충돌할 경우는 MOU가 우선한다.

 

그림 2 제17차 Tokyo 의장 및 사무국직원. 발표자가 필자이고 필자의 왼쪽이 사무국장 오카다씨 맨 오른쪽은 APCIS Manager
그림 2 제17차 Tokyo 의장 및 사무국직원. 발표자가 필자이고 필자의 왼쪽이 사무국장 오카다씨 맨 오른쪽은 APCIS Manager


그러나 투표는 승자와 패자가 나오게 되므로 가급적 참석자가 충분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여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중재안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장이 업무를 충분히 이해할 경우는 자신이 직접 만들 수도 있으나 만일 이것이 거부되면 수습이 어려워지므로 의장은 시종일관 중립적인 위치를 견지하는 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중재안은 사무국 직원이나 해당 문제에 대하여 권위가 있는 가진 참석자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또 필요할 경우 직접적인 이해관계자가 아닌 참석자의 견해를 물어 열 띈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도 요령이다.


또 의장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회의시간의 조절이다. 연일 계속되는 회의에서 참석자의 유일한 낙은 회의 중간의 휴식시간(tea time)이다. 따라서 의장은 휴식시간이 가까워지면 의제내용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휴식시간에 맞추어 끝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 회의장은 주최 측에서 회의시간에 맞추어 임차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예정시간을 넘어서까지 진행하면 회의 이후 회의장의 사용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지면 적절히 토론을 마치고 다음의 회의시간으로 연기해야 한다.

 

마. 잘 안들리는 영어 처리 방법
국제회의는 대부분 통역을 따로 두지 않고 영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장이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면 회의진행을 맡기가 거의 어렵다. 특히 회의진행에서 어려운 일은 베트남, 태국 등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의 영어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런 참석자들의 영어는 의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잘 이해가 안가면 의장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발언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시 말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 사무국직원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모르면 회의결과보고서에 포함시키기 위해 발언의 요지를 쪽지로 해서 제출하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의장은 알아들었는데 일부 참석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참석자들은 의장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국제회의는 개별 참석자 간에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의장과 개별 참석자 간에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때 알아듣지 못한 참석자는 조금 전에 발언한 참석자에 대하여 직접 질문하는 것이 아니고 의장에게 "무슨 내용인지 의장을 통하여(through you) 질문하고 싶다"고 발언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때 의장은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당초의 참석자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요청하게 된다.

 

4. 북한의 협력회원 가입 좌절
Tokyo MOU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정회원(full member), 아직은 정회원이 되지 못한 협력회원(cooperation member) 및 옵서버(observer)로 구성된다.  2007년 9월 현재 Tokyo MOU의 정회원은 18개국이며, 협력회원은 없으며, 옵서버는 북한, 마카오, 솔로몬 아일런드 및 미국의 5개국이다.  협력회원의 기간은 3년이며, 협력회원의 기간이 끝나면 정회원 가입 신청을 해야 하며, 이 때 정회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다시 옵서버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Tokyo MOU에서는 제 15차 위원회에서 협력회원의 자격에 대하여 토론을 시작하였으며, 제16차 위원회에서도 시간부족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바 있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협력회원국의 자격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 그간 협력회원국이 되기 위한 별도의 자격은 없었는데 Paris MOU의 자격요건 강화에 따라 Tokyo MOU도 이에 따라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난 회기에서 제안된 새로운 자격요건은 협력회원으로 신청하기 전 최근 3년간 Tokyo MOU 지역 내 출항정지율(detention rate)이 지역 평균의 2배 이내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굳이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 논란이 분분하였고, Tokyo MOU에서는 반드시 이번 회기에서 이를 채택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북한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하고 이번 회기에 협력회원으로 가입을 신청하였다.  특히 북한은 최근의 어려운 외환사정에도 불구하고 자국이 경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Tokyo MOU 항만국통제관 교육훈련에 2명의 검사관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고는 해도 최근 3년간 항만국통제에 따른 출항정지율이 지역평균의 4배를 초과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위원회에서는 북한의 가입신청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가 여러 국가의 관심사항이 되었다. 북한의 협력회원 가입 신청에 대하여 최초의 토론이 벌어진 곳은 위원회 의장이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상설작업반(Standing Working Group)이었다.

 

 과거 일본인 납치사건 및 핵실험때문에 북한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이러한 북한의 신청에 대하여 협력회원의 자격요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사무국에서 바로 거부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최근 남북간의 긴장완화 추세를 반영하고, 또 북한을 국제무대로 이끌어 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통일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북한의 가입신청은 사무국에서 거부되는 것은 부당하고, Tokyo MOU의 최고의결기관인 위원회에서 토의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특히 필자가 주장한 것은 지난 회기에서 협력회원의 가입자격에 대하여 토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적인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를 기준으로 간주하고 북한에 적용함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또 사무국은 위원회에서 위임한 사항에 대하여만 처리할 수 있는데 회원의 가입과 같은 중요한 일을 위원회의 위임도 없이 마음대로 처리함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사무국은 나의 주장에 따라 북한의 신청은 위원회에서 처리하기로 동의하였다.


홍콩 회의장에서 만난 북한대표는 위원회 의장인 나에게 와서 자신들의 협력회원 가입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만일 이번에 협력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항만국통제 결함지적률이 훨씬 더 빨리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협력회원은 기간이 3년이므로 이 기간 안에 결함지적율을 낮추지 못하면 안되기 때문에 남한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의장으로서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고 하고, 위원회는 결국 참가국의 과반수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회의 전에 북한을 지지하는 국가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라고 조언하였다.  특히 현재는 협력회원국에 대한 기준이 없으므로 북한은 협력회원으로 가입할 권리가 있으며, 설사 이번 위원회에서 기준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북한은 이미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으므로 이 기준을 소급해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드디어 협력회원의 기준에 대한 의제가 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이 기준은 종래부터 상설작업반에서 계속 토의된 사항이라서 이 기준의 채택에 대하여 별 의견이 제시되지 않았다.  일단 이 기준은 채택되고 난 후 필자는 이 기준을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가를 위원회에 물었다. 북한이 열심히 활동한 탓인지 이에 대하여 참가국은 아무도 발언하지 않고 침묵이 흘렀다. 

 

이때 호주대표가 시행일을 별도로 정하지 않으면 각종 기준은 채택된 날로부터 6개월 후부터 적용된다는 Tokyo MOU의 규정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그렇다면 6개월 후인 2008년 4월부터 적용되는 것에 이견이 없냐고 물었고,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새로운 규정이 2008년부터 적용된다면 이번 회기에는 협력회원의 자격이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북한은 별 어려움이 없이 협력회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어서 북한의 가입신청에 대한 의제의 순서가 되었다. 사전에 북한은 중국, 말레이시아 등을 접촉하여 차례로 북한의 가입신청에 대하여 찬성발언하기로 수배를 해놓았다고 한다. 의장인 필자는 북한의 가입신청에 대하여 의견이 있냐고 물었으나 아무도 발언하지 않았다.  보통 의제에 대하여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으면 제안한대로 결정되는 것이 상례인지라 의장인 필자는 북한의 가입신청에 대하여 반대하는 국가는 없냐고 물었다. 

 

아무도 발언이 없어 필자는 북한의 가입신청이 승인되었다고 발언하려는 찰라 일본이 카드를 들어 발언을 신청하였다.  일본은 북한의 가입신청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북한이 이메일로 사무국에 가입신청을 하였는데 사무국은 이러한 이메일을 북한당국의 진정한 의도로 보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사무국은 협력회원으로 가입신청을 이메일로 한 북한의 신청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대답하였다. 


이때 북한 대표가 발언신청을 하여, 북한에서는 이메일을 보낸 후 윗사람들의 결재를 받아 필요한 서류를 잘 보관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그러자 일본대표는 그러면 이메일 보낼 때는 아직 윗사람의 정식 결재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대하여 북한대표는 말이 막혔다.  생각건대  이때 북한대표는 북한의 업무처리 관행이나 통신망 사정 등을 이야기하여 다소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있어도 이러한 가입신청은 북한의 진정한 의사라는 식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침묵이 계속되자 뉴질랜드 대표는 북한의 가입문제를 내년의 위원회에서 다시 토의하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대하여 유일하게 일본이 찬성의사를 표시하였다.  필자는 북한의 회원가입 좌절이 안타까워 다른 의견은 없냐고 계속 물었으나 참가국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결국 의장으로서 필자는 북한의 가입신청은 2008년 가을의 다음 위원회로 연기되었다고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와서 생각할 때 이때 북한은 자신의 가입신청은 이미 제출되었으므로 이번 회기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여야 하였으며, 만일 다음 회기로 연기될 때는 새로운 규정의 적용이 유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북한대표는 아직 국제회의에 참여한 경험이 적다보니 회의의 진행절차에 미숙하고, 영어구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하였다. 

 

결국 북한은 협력회원으로 '거의' 가입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단계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이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될 경우 북한은 그간의 높은 출항정지율을 감안할 때 2008년에 협력회원으로의 가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무리 빨라도 2012년은 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5. 차기 위원회의 의장선출
이번 위원회를 마지막으로 필자가 3년간의 의장업무를 마치게 됨에 따라 참가국들의 관심사항은 누가 차기 의장으로 선출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거의 모든 다자간 국제회의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중요한 사항은 실제 회의가 열리기 전 inner circle member 간에 협의를 통하여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호주와 러시아에서 각각의 강력한 의장후보가 있어 사전에 제대로 충분히 토의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차기 의장은 현지에서 위원회의 분위기에 따라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V씨는 원래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전문가로서 Tokyo MOU의 PSC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컴퓨터시스템(APCIS) 업무를 토의하기 위하여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0여 년간 이 업무를 계속하면서 IMO를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PSC에 관하여도 전문가가 되었다.  따라서 그간 흑해지역의 항만국통제위원회(Black Sea MOU) 의장과 IMO의 작업반(Working Group)의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V씨는 회의에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하여 너무나 많은 발언을 하는 한편, 발언에 걸맞은 후속조치가 없어 참석자 사이에서 별로 인기는 없는 편이라고 하였다. 


한편, 2004년 샹하이 위원회에서 뉴질랜드의 대표가 임기 3년의 의장직을 마침에 따라 V씨는 내심 그 후임으로 의장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국제회의 의장이 되면 별도의 보너스가 지급되는 등의 인센티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Tokyo MOU의 사무국장 사사무라씨는 IMO에서의 업무 등을 통하여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주요 회원국의 지원을 요청하여 이전에 IMO의 기국준수전문위원회(FSI)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한국의 임기택씨가 의장으로 당선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임기택씨는 해양수산부에서 항만국통제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담당함에 따라 의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하고 사퇴하였다.  이에 따라 2005년의 방콕 위원회에서는 임기택씨의 후임을 다시 선출하게 되었고, 필자는 일본 등의 지원에 힘입어 만장일치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당시 필자가 의장으로 선임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04년의 샹하이 위원회에서 한국인을 선임한 이상 임기택씨가 사정상 사임했어도 그의 후임은 한국인이 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V씨는 위원회에서 신상발언을 통하여 선출된 필자를 의장으로 지지하지만 향후 의장 선출과정은 보다 투명해야 한다는 불만어린 주장을 하였다. 


2007년 초 Tokyo MOU 사무국장 오카다씨는 V씨에게 차기의장으로써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대하여 V씨는 별 관심이 없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오카다씨는 차기 의장으로서 누가 좋겠냐는 의견을 필자에게 물어왔고, 필자는 이번은 영어권인 호주에서 맡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오카다씨는 호주의 M씨와 접촉하여 선출되면 의장을 맡도록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러나 2007년 6월 26-7일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Saint Petersberg)에서 개최된 제3차 한·러해양안전회의시 러시아는 V씨의 차기 의장선출에 한국의 지지를 요청하였고, 한국은 이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V씨의 의장출마 의사를 알게 된 Tokyo MOU사무국은 향후의 조치방안에 대하여 필자와 협의하였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하였다.


2007년 9월 홍콩 위원회가 개최되어 필자는 호주의 M씨, 러시아의 V씨를 각각 개인적으로 접촉하였던 바, 모두 의장으로 선출되면 기꺼이 의장직을 수행하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다른 나라 대표들을 접촉하여 본 결과 대체로 대세에 따르겠다는 의견이나, 호주를 지지하는 대표가 다수였다. 그러나 관례적으로 의장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선출하기 때문에 필자인 의장이 최초의 의장 추천자로서 누구를 지명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바뀔 개연성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필자로서는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의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상 차기 의장선거는 4일간 회의의 마지막 날 오전에 열린다.  따라서 필자는 사무국장 오카다씨와 협의하여 회의 3일째 환송만찬을 앞두고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와 뉴질랜드, 아시아권 국가인 중국 및 일본의 대표, 현직 의장인 필자 및 사무국장 오카다씨가 참석하는 긴급 비공식 회의를 주선하였다.  이 회의에서 캐나다와 뉴질랜드 대표는 V씨가 다소 성격상 문제가 있기는 해도 능력은 있으며, 만일 호주의 M씨와 경선을 할 경우 그간의 관례가 깨어진다며 의장으로서 러시아의 V씨를 지지하였다. 

 

또 호주는 수년전에 비록 2년이지만 의장의 역할을 하였으니 아직 한번도 안한 러시아가 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대로 중국과 일본은 V씨가 의장이 될 경우 자기 주장만 하여 회의가 엉망이 될 확률이 높다며, 경선을 하더라도 V씨 지지는 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대하였다.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뉨에 따라 모든 결정은 다시 의장의 몫으로 돌아왔다. 


필자는 비록 V씨의 성격에 문제는 있어도 경선을 피하려면 결국 V씨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의사결정과정에서 최선이 안되면 차선(second best)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각국대표를 설득하였다. 그 결과 참석자들은 차기 의장으로 V씨를 선출하기로 최종 합의하였다.  그러나 호주의 M씨가 경선을 통해서라도 의장이 되고자 할 경우 그의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최종적으로 그의 의사를 확인하기로 했다. 

 

또 V씨가 의장이 될 경우 이제는 의장으로서 다른 참석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도록 요청하기로 합의하였다.  필자는 참석자들에게 이왕 V씨를 차기 의장으로 선출하기로 합의하였으니 회의에서 의장으로 추천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추천할 사람은 러시아의 V씨가 알아서 섭외하지 자신들은 못하겠다고 하였다.  참석자들의 V씨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환송만찬이 벌어진 유람선에서 필자는 오카다씨와 함께 호주의 M씨를 따로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경선을 할 것인지 물었다. 물론 경선을 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같이 하였다. 이에 대해 M씨는 관례를 어기면서까지 경선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하며, V씨가 끝내 경선까지 가려고 하면 자신은 차기 의장직을 포기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필자와 오카다씨는 다시 러시아의 V씨를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이제 차기 의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울러 일부 국가들이 그간의 V씨 태도에 대하여 우려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향후 의장으로 활동할 경우에는 참석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도록 권고하였다.  V씨는 만면에 희색을 띠고 기뻐하였다.  이에 따라 필자는 내일 회의에서 V씨를 추천할 국가를 정해놓고 알려달라고 요청하였고, V씨는 싱가폴이 자신을 지명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 날 최종 위원회에서 차기 의장선출을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필자는 V씨를 지지하는 국가가 별로 없는 것을 아는지라 우리나라 대표에게 얘기해서 기왕 의장으로 내정되었으니 V씨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도록 요청하였다.  당초 정해진 순서에 따라 싱가폴이 V씨를 차기 의장으로 추천하였고, 칠레가 이를 제청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이 지지하였다.  이에 따라 의장인 필자는 V씨가 만장일치로 의장으로 선출되었음을 선포하였다.  결과적으로 비록 인기가 없어도 꼭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V씨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는 제3차 한·러해상안전회담의 합의를 이행하였고, 또한 필자는 의장의 막중한 역할을 실감하였다.

 

6. 나오며
필자가 졸지에 Tokyo MOU의 의장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제회의 의장을 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체적으로 회의 특히 국제회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제회의에서 과연 어느 때 말하고,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국제회의의 필수 요소인 영어 구사능력을 제대로 갖춘 경우도 흔치 않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이 회의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어려서부터 회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회의는 참석자들의 의사를 종합하여 개인이 가진 생각보다 더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하여 의장은 참석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도록 북돋아 주고, 참석자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회의는 높은 사람이 일방적인 지시를 하고, 회의 참석자는 이를 받아 적는 시스템인 경우가 보통이다. 

 

혹시 아랫사람이 의견을 제시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찍히기 일쑤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회의의 운영에 대한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다.  따라서 국제회의에 참가할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국제회의의 운영체제(mechanism)를 이해하고, 회의에서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자신의 의사가 회의결과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자간 국제회의의 특징은 대부분의 중요한 의제가 inner circle member 간에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하여 사전에 결정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단순히 회의에 의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나라 인사가 inner circle에 들어가 우리가 제출한 의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제회의에 참가한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국제무대에서 inner circle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반면에 외국의 공무원은 자신의 분야에 20년, 30년씩 계속 근무하며, 계속 그 분야의 다른 나라 공무원과 교류하기 때문에 inner circle에 들어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이들은 국제회의시 자신의 배우자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배우자까지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순환보직을 통하여 여기저기 돌아서 근무하다 보니 어느 국제회의에 가도 항상 새로운 얼굴들이다. 

 

심지어 국제회의 참석자가 매번 바뀌기도 한다. 업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새 얼굴이 inner circle에 들어갈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키우려면 공무원의 순환보직을 폐지해야 하며, 정 안되면 국제회의 담당자만큼이라도 순환보직제도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승진을 순환보직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온다면 이를 폐지함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왜 시정이 안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국제회의는 국가와 국가의 만남이라고는 해도 실제는 국가를 대리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다른 국가의 대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면 자신의 영향력은 물론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 또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면 inner circle에 쉽게 들어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를 위하여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평소 자신의 리더쉽, 전문지식, 영어구사능력, 사교성 등의 개인능력을 국제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들은 개인적인 인연보다는 전문지식을 통한 교우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친목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제회의 참석자를 선발하는 부서에서도 능력을 가진 자만이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적절한 여과장치를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Tokyo MOU 위원회 의장을 마친지 이제 2개월이 다 되어간다.  2005년의 방콕 회의를 앞두고 과연 의장직을 수락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일, 평소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실제 회의에서 영어가 잘 안나오기 때문에 회의를 앞두고 의제에 나오는 용어를 익히기 위하여 이런저런 노력을 하면서 마음고생 하던 일, 위원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 공연히 심리적인 압박을 받던 일, 회의 중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되어 좌충우돌 하던 일들도 이젠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3년간 의장으로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에 나오는 면면들을 보면 마치 엊그제 만나서 나름대로 동고동락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나서 잘했다는 주변의 칭찬을 받으니 그간의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이 맛에 감투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무튼 필자의 뒤를 이어 한국인으로서 국제회의의 의장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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