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콤파스에 KP&I클럽 문병일 전무가 나와 ‘전환기 Korea P&I 성장전략’을 발표하였다. “조합원의 이익보호와 조합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해운업 및 해상관련사업의 경영안정 확보 및 향상을 목적”으로 발족된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이 현재 대내외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전환기란  갈림길을 뜻하며,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도약과 쇠락이 결정된다. 이러한 중압감 때문인지 실무책임자 문병일 전무의 발표자세는 이날따라 더욱 진지했다. 문 전무는 한국해양대학을 나와 항해사로 8년간 승선하였으며, 한국외대에서 보험경영학 석사, 한국해대 해사법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한진해운 법무보험팀 보험클레임 담당, 한국선주협회 해상안전연구실 연구원을 거쳐 한국P&I클럽 설립에 참여하여 클레임팀장 겸 계약팀장을 맡았으며, 2000년 KP&I 설립 이래 17년간 재직하며 내실을 다져왔다. 이날 발표된 KP&I의 당면과제와 성장전략을 정리하여 게재한다.
 

 1. KP&I 운영현황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의 운영현황을 소개하면, 2017년 현재 회원사 218개, 가입척수 1,084척, 가입톤수 2,118만2,000총톤, 보험료 3,109만 2,000달러이다. 2011년의 가입톤수 1,000만 7,000총톤, 보험료 3,018만 4,000달러와 비교하면 가입톤수가 2배 이상 늘었으나 보험료는 비슷하여 해운경기를 감안하여 보험료 인상을 가급적 억제한 것을 알 수 있다. 선대 구성을 보면, 외항선대 78%, 외국선대 10%, 내항선 7%, 원양어선 3%, 국공유선이 2%를 차지하여 외항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시장점유율 면에서는 KP&I의 보험료는 3,100만달러로 국내 보험료 1억 7,000만달러의 18% 이다. 척수 기준으로 1,000총톤급 이상 외항선의 국적선 및 BBCHP는  7,000총톤 이하가 48%로 가장 많고, 7,000톤~2만톤이 35%, 2만톤~3만톤 21%, 3만톤급 이상이 9%로 뒤를 잇고 있다. 전체 척수 1,280척의 28%인 360척의 선박들이 KP&I에 가입하였다. KP&I의 재무상태는 2016년 매출이 3,167만 1,000달러, 영업이익 41억 9,200만원이었다. 여유자금은 4,300만달러(517억원)로 수입보험료의 138%, 예상 클레임(outstanding claim)의 140%에 해당하며, 신용등급(AM Best)은 A-로 메리츠보험,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WoE)클럽과 동급이다. 담보한도 및 재보험구조는 KP&I와 뮌헨재보(Munich Re)가 각각 50만달러로 100만달러, 한국재보(Korean Re)가 100만달러로 모두 200만달러이며, 나머지 200만달러 초과 10억달러까지는 로이즈가 담보하는 구조이다. 한편, KP&I의 최대 순보유위험(net exposure)은 사고당  25만달러이며, 해외로 나가는 재보험료는 전체 수입보험료의 12.5%가 된다.
 

2. P&I 보험시장 동향
세계 P&I 보험시장 동향은 첫째,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논쟁이 뜨겁다는 것이다. IG클럽(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 중에 가장 큰 가드(Gard)의 보험료가 6.1억달러이고, 가장 작은 아메리칸(American)은 0.8억달러이다. 얼마 전에 추진되었던 3.8억달러의 UK클럽과 2.3억달러의 브리타니아의 합병은 성사되지 못했다. IG클럽은 총 13개로 된 카르텔로 전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둘째는 다각화(diversification) 추구이다. 가드는 선체보험(H&M), 불가동 손실보험(loss of hire), 에너지 분야에 참여하고, NoE는 선체보험, 어업, 수산업 장비업체, 스컬드(Skuld)와 스탠더드는 로이즈 신디케이트로 들어가 선체보험, 에너지, 화물, 터미널 보험도 취급하며, 스웨디시(Swedish)는 선체보험과 불가동 손실보험도 병행하고 있다. 셋째, 고정식 보험료(fixed premium provider)의 폭주이다. 브리티시 머린, 래츠 머린(Raets Marine), 오스프리(Osprey) 등 비IG클럽들이 고정식 보험료를 시행하자 IG클럽들도 이에 가세하여 고정식 보험료가 폭주하고 있다. 넷째, 로컬(local)을 선점하기 위해 손보사들과의 제휴가 한창이다. CPI는 UK, SSM(Steamship Mutual), Skuld, Swedish +NoE +Gard와 제휴하고, PICC는 WoE, 도쿄머린(Tokio Marine)은 스탠더드, 미쓰이 스미토모는 스컬드, 일본의 민영 손보사인 솜포저팬(Sompo Japan Nipponkoa)은 NoE와 손을 잡았다. 다섯째, 보험료 환급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도 말에 평균 3.6% 환급하였으며, 2017년 말에도 일부 클럽의 환급이 예상된다. 한편, 2015년에 평균 10%의 보험이익을 기록하였으나 2016년 평균이익은 4%로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국내동향을 살펴보면, 첫째,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추구하고 있다. 보험료 20억원의 급유선협회가 해외 P&I를 재보험자로 하여 해운조합에서 메리츠화재로 옮겼고, 보험료 50억원의 예선업협동조합도 해운조합에서 메리츠화재와 해외 P&I를 재보험으로 하는 독자공제로 전환하였으며, 부산의 예부선협회도 해운조합에서 이탈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의 위험한 참입도 시작되었다. 동부화재는 로데스터(Lodester)와 손잡고 원양어선을, 현대해상은 내비게이터(Navigator)와 손잡고 원양어선 및 예부선을, 메리츠화재는 래츠머린과 손잡고 급유선 및 예선 업무에 참여하고, 한화손보도 진입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제는 우리 클럽이라는 프리미엄이 희미해졌고 “가격우선(price first), 사소한 부담은 사절(never even a tiny burden)”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외국 P&I클럽들의 KP&I 때리기도 심화되고 있다. 우리도 일본의 JPIA 같이 지역 보호장치(region spread)가 필요하고, 허울 좋은 보험업감독규정도 개정돼야 한다. 더구나 시장의 보험료 규모는 해마다 감소하여 13개 IG클럽의 총 보험료는 2015년 45억달러에서 2016년 42억달러, 2017년 36.5억달러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3. KP&I의 경쟁력
KP&I의 경쟁력은 우선 규모면에서 충분하지 못하다. 매출 대비 일반관리비 비중이 IG 평균인 15.3%에 비해 22.1%로 높다. 일본의 JPIA는 우리의 절반 수준인 11.3%에 불과하다. 일반관리비 대비 투자수익률도 IG가 평균 62%이나 KP&I는 13%이다. KP&I의 직원 수는 총 37명이다. IG클럽들은 운영회사인 매니저(Managers)를 두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가드는 Gard AS, UK는 토머스 밀러, 브리타니아는 틴달 같은 운영회사를 두고 있다. IG에 가입하지 못한 KP&I로서는 인수할 수 없는 선박들이 있다. IG클럽 가입을 요구하는 선박금융계약(Loan Agreement)과 유연탄매매계약서(Glencore), 항해용선계약서, CVC, COA 및 정기용선계약서로 인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심지어 산업은행의 KDB term sheet와 캠코(KAMCO), KSF의 선박금융계약서에도 IG클럽 가입을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호주의 광산회사 BHP와 우리나라 POSCO까지도 IG클럽에 가입한 선박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KP&I로선 신한캐피탈의 선박보험계약 조건인 “선주책임상호보험(P&I Club Insurance)에 투자적격(신용등급 BBB) 이상 및 갑이 인정하는 P&I Club에 가입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바람직하다.  

또한 KP&I는 단일종목 보험자로서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선주상호보험조합법 3조(사업의 내용)에 의하면 “조합은 조합원인 선주 등이 부담하는 열거된 책임 및 비용에 관한 손해보험사업을 한다”로 되어 있고, 6조(겸업금지)에는 “조합은 제3조에서 정한 손해보험사업과 그에 딸린 사업을 제외한 사업은 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보험업법 4조에 의하면,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그 재보험도 경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한국해운조합법 6조에는 “조합원의 사업수행 중 발생하는 재해에 대비한 공제 및 보헙업에 따른 보험회사, 선주상호보험조합법에 따른 선주상호보험조합 등으로부터의 재공제”로 되어 있어 KP&I에 관한 조항과 비교가 된다.

KP&I의 강점은 동일지역, 동일시간대, 동일언어, 동일문화라는 특성과 해운시장 상황과 연동하여 보험료를 부과하여 우리나라 해운업의 보험관리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10년간의 IG클럽과 KP&I의 일괄인상률(general increase)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07년을 100으로 하여 JPI가 244.2, NoE 223.8, UK 202.8에 비해 KP&I는 137.4로 해운시황을 감안하여 6년간 보험료를 동결시켜 왔다.
 

4. 성장을 위한 정책 방향
KP&I의 비전은 “첫째, IG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럽이 되자. 둘째, 세계 10위권 규모로 도약하자”이다. 추진전략과 실천과제는 가입제약 요소 해소, 규모의 경제 조기 확보, 보험상품의 다각화, 보완과제 등이다. 우선, 가입제약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선박금융계약상 및 용선계약상의 ‘IG Club only' 조항을 개정하여 ’IG Club or Korea P&I'로 바꿀 수 있도록 한국선주협회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 11일에 IG클럽인 스탠더드(Standard P&I Club)와 공동인수를 제휴하였다. 이렇듯 각종 인수제약 요인들을 완전히 해결하여 틈새시장 주자(niche market player)에서 본격적인 P&I클럽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현재 KP&I의 손해보상 구조는 50만달러까지는 KP&I와 한국재보가 보상하고, 200만달러까지는 뮌헨재보(Munich Re) 등이, 10억달러까지는 로이즈(Lloyd’s) 등이 보상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IG와의 공동인수 제휴로 50만달러까지는 KP&I가, 700억달러까지는 KP&I와 스탠더드클럽이 보상하되 기존 방식도 병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아울러 규모의 경제로의 비약적 도약(quantum jump)을 위해 KP&I와 해운조합공제의 통합관리도 추진할 것이다. 규모의 이익 창출과 재보험료 및 관리비 등의 비용절감 효과와 함께 다양한 서비스 인력을 확충하여 서비스 질을 개선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지배력이 확대되고, 출혈경쟁이 감소하여, 작은 클럽(small club)에서 세계적 클럽(world-class club)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P&I 보험시장 발전방안’이라는 연구용역을 추진하려고 한다.

독립적인 P&I 관리회사 설립도 필요하다. KP&I 상근직원과 해운조합 공제파트 직원 등 총 100명의 소속을 관리회사로 이전하여 두 조합의 관리업무를 유상 대행한다면, 보험료 1억1,000만달러 규모의 세계 11위의 P&I 클럽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자산은 개별 조합에 잔류시키고 조합의 경영이익도 각 조합에 귀속시키면 될 것이다. 아울러 보험상품 다각화가 필요하여 선주가 가입하는 해상보험(선박보험, 전쟁보험, 해적납치보험 등) 및 P&I 재보험 제공도 허용해야 한다. KP&I의 해난사고 처리를 위한 전문성을 활용하고, 원스탑 서비스로 선주의 사고 및 보험관리 효율성을 증대하고 포트폴리오 다양화로 KP&I 수입 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주상호보험조합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해양수산법안심사 소위에 이첩되어 있으며, 올 12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5. 성장전략 보완과제
KP&I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클럽이라는 인식이 복원되고 강화되어야 하며, 정부정책 관련 선박부터 유치가 확대돼야 한다. 국가필수선박 75척 654만총톤과 국가안보선대 49척, 전략화물운송 벌크선 86척 690만총톤과 함께 정책금융 수혜선박인 한국선박해양(주) 지원선박, 한국해양진흥공사 지원선박, 폐선보조금 수혜선박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P&I 보험시장 질서개선 차원에서, 보험업법 3조를 적용하여 누구든지 금융위원회 허가를 받은 보험회사가 아닌 자와 보험계약을 체결, 중개, 대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선주상호보험조합법 7조와 보험업법 3조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인가받지 않은 외국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데, 선박보험이 보험업법 3조와 보험업법 시행령 7조에 의해 적용면제를 받기 때문이다. P&I 보험시장의 질서개선도 필요하다. 외국 보험회사들은 이메일, 팩스 등을 이용하여 국내 거주자와의 보험계약 체결이 가능하나, 보험업감독규정 1-6조에 의하면, 국내 소재 브로커에 대한 중개의뢰는 불허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의 P&I클럽, 국내 브로커 및 외국 P&I클럽의 국내 연락사무소들의 위법행위를 단속해야 한다.
KP&I는 IG클럽 서비스를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 서비스가 가능한 인적 자원 확보, 수준 높은 지식과 경험, 멤버의 고충과 걱정거리 해소 우선, 선제적인 사고처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내실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이어 참석자들의 코멘트가 있었다. KP&I가 창설되는데 숨은 공로자들이 많았다. 여러 사람들을 설득하며 여론과 기반을 조성해준 박현규 이사장과, 각종 장벽과 규제를 풀어준 규제개혁위원장이던 조정제 전 해수부장관, 법률자문과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은 최종현 변호사 같은 분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KP&I가 발전하여 명실상부한 선주상호보험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주체의식을 가지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정부로부터 자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주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내 선사들의 KP&I 가입촉진을 위해서는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KP&I와 해운조합공제의 통합은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통폐합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M&A의 원칙엔 찬성하지만, 세부적인 how라는 문제에 봉착하여 실패한 사례가 많다. 노조문제도 걸림돌이다. KP&I의 자립과 관련하여 선주들이 1/n로 분담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현재 정부는 KP&I 운영에 깊이 간여하지 않고 맡기는 편이다. 선주, 조선, 금융의 상생차원에서 최소한 30%는 국내화 하고, 보험도 최소한 30%는 국내에 가입해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KP&I가 대내외적인 전환기를 잘 극복하여 IG클럽을 넘어서는(beyond IG service) 유수한 클럽이 되기를 바란다.   
   
       
‘힐빌리의 노래’
빈곤과 무너져가는 가족,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난 한 청년의 성장기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그러나 엘레지라 하여 결코 비가(悲歌, elegy)나 만가(輓歌)는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빛을 보여준 담담하고 진솔한 이야기이다. ‘역사의 지금 이 순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소개가 진부한 감도 들었지만,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진 ‘러스트 벨트’ 오하이오 주의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가난한 지역인 켄터키 잭슨을 오가며 자라난 한 청년의 성장기를 통해 미국의 내재된 갈등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가 안 되고 미국인에게도 또라이라 불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우리가 모르는 미국인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이 책이 이를 잘 설명해 주었다. ‘힐빌리 노래’는 제1부 ‘내 인생의 뿌리, 힐빌리에 관하여’, 제2부 ‘힐빌리의 이방인,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그늘’로 되어 있으며, 1부에는 힐빌리 마을 잭슨, 할모와 할보의 결혼, 실패한 중산층, 쇠락하는 미들타운, 길게 선 아버지 후보자들, 할보의 죽음과 엄마의 폭주, 덫에 걸린 기분으로 이어지고, 2부에선 할모의 품으로, 독립의 시작과 할모의 죽음, 미국에서 가장 비관적인 집단, 신분상승의 이면, 그들만의 세상, 벽장 속 괴물, 미들타운에 필요한 것으로 꾸며져 있다.

소제만으로도 최근 미국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갈등을 엿볼 수 있다. 저자이자 주인공인 J.D 밴스는 직설적이고 개성이 강한 할보(할아버지)와 할모(할머니), 폭력적인 마약중독자 엄마, 엄마의 숱한 동거와 이혼으로 생긴 많은 아빠들, 엄마처럼 돌봐준 누나 틈에서 자라나 정신적 지주 할모에게 잘 보이려 주립대학에 가고 학비를 벌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하고 오기로 예일대 로스쿨에 지원하고 합격하여 쇠락한 힐빌리의 촌놈이 상류사회 인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의지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너무 똑똑하여 피하고 싶었던 아내 우샤도 그의 성장과정과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마지막 장면에 브라이언이라는 제2의 밴스가 갑자기 나타나 과연 그는 또 어떤 삶을 살아갈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도 밴스처럼 숙명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신분상승의 길을 열어갈 것인지, 아니면 힐빌리의 보통사람들처럼 분노와 타락의 길을 택할지 궁금해진다. 밴스는 자신의 성공을 조명하기보다는 자신이 자란 그 개천이 어떠한 공간이었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냈다. 그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그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다행히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변엔 늘 따뜻함과 진솔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온도는 언제나 적당했다고 말한다. 또한 해병대 복무시절의 황당한 경험도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할 때 한쪽에 치우치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의 복지제도를 이용하여 직장을 쉽게 버리고 실업급여로 근근이 살아가며 자신의 신세만 한탄하는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며, 헬 조선, ‘금수저 흙수저’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젊은 세대와 힐빌리 청년 밴스의 삶이 교차된다. 미국의 백인사회에도 분명 넘기 힘든 장벽은 있었다. 그러나 그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못 넘을 장애는 아니라는 사실을 힐빌리 토박이 J.D 밴스가 보여주었다. 미국에도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소외된 사람들의 냉소와 분노, 파괴와 체념이 널려 있지만,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는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힐빌리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직시해야 할 어둠의 실체를 바로 비추어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