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물 제거를 위한 보험가입강제에 대하여 

 
 

선박이 항해하는 길인 항로는 연안과 원양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원양에는 전혀 정하여진 항로가 없이 완전히 항해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 그렇지만, 연안에는 항로가 설정되어있다. 항로가 설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다에 침선이나 얕은 곳이 있어서 항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여 안전하게 항해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항해에 대한 장애물에 선박이 부딪치면 선박은 최악의 경우 침몰하게 된다. 항구 혹은 항구근처에 있는 항로에 선박이 침몰하게 되면 항구자체의 기능이 마비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항해에 지장이 없도록 항로를 잘 관리할 의무를 부담한다. 
보통은 항로에 침몰한 침선과 같은 난파물만 항해의 장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바다에 떠다니는 컨테이너 박스와 원목과 같은 경우도 항해의 큰 장애물이 된다. 부유하는 원목이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선체와 부딪치면 큰 구멍을 선체의 외벽에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부유하는 원목을 국가가 제거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제거의무를 누가 부담하는가?
난파물이 발생한 경우 다른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하여 소유자가 이를 제거하거나 위험성을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선박의 경우 위험물임을 알리고, 제거하는 의무는 원칙적으로 선박의 소유자가 부담한다(선박입출항법 제26조에는  난파물의 소유자와 점유자이고, 해양환경관리법 제64조 제1항에 의하면, 적재선박의 선장 혹은 원인제공자이고, 해사안전법 제9조 제1항에는 선장, 선박소유자 또는 선박운항자이다). 그런데, 원목이나 컨테이너 박스와 같이 운송중인 물건의 난파물이 된 경우는 어떠한가? 이들 물건의 소유자는 육상에 따로 있고 선박은 단순히 운송에 이용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법은 물건의 소유자 혹은 물건의 점유자에게 제거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공유수면관리법 제13조 제1항). 만약, 나용선(선체용선)된 선박이 물건을 운송 중이었다면 난파물이 될 당시 나용선자가 그 물건의 점유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나용선자가 제거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선박의 소유자는 제거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2006. 1. 묵호항 동쪽 37마일 근처에서 원목 2000개가 해상으로 유출된 튜맨호 사건에서 정부는 선박의 선장에게 원목제거명령을 내리자 선장이 이를 거부하여, 정부가 6억원의 비용을 들여 원목제거작업을 한 다음, 비용을 청구하면서 선박을 가압류했다. 그러자, 선주가 가압류가 잘 못되었다고 오히려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되었다. 법원은 공유수면관리법상 제거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선주가 아니라 나용선자였기 때문에, 채무자가 아닌 선주가 소유하는 선박에 대한 가압류는 불가하다고 판시하여 정부가 패소하게 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08.1.31. 선고 2007나23274판결). 법원의 판단은 정당하다.   

 

제거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는가?

난파물의 제거비용은 상당히 고액이다. 특히 수심이 수십미터 되는 곳에 가라앉아 있는 선박의 인양은 쉽지 않고, 특별한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다. 특히 외국의 선박이 우리나라의 항내에 침몰한 경우에 선주들이 적극적으로 제거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행방불명이 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에 항로를 안전하게 유지할 의무를 부담하는 우리 정부는 제거에 적극 나서게 되었고, 비용이 지출되었다. 
정부로서는 대집행을 한 것이니 제거의무를 부담하는 선박의 소유자 혹은 물건의 소유자에게 지출된 비용의 회수를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연락이 닿지않는 소유자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선주들은 선주책임보험(소위 P&I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선주가 가입한 책임보험자에게 직접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각국의 보험법, 국내단행법 혹은 국제조약에 부여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정부를 보호하는 큰 기능을 한다. 


책임보험이란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 자신이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책임보험자에게 청구할 권리를 가지는 보험을 말한다. 해운과 관련하여서는 P&I보험이 책임보험자의 역할을 하여 대부분의 선박은 P&I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Korea P&I, 해운조합의 책임보험도 동일한 기능을 한다.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여력이 없는 경우 피보험자가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했음에도, 보험을 통한 구제가 작동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맹점을 타파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는 “직접청구권”(direct action)제도를 도입했다.  


책임보험에 가입된 피보험자가 제3자에게 피해를 야기한 경우 제3자가 피해자는 물론이고 동시에 책임 보험자에게 그 피해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직접청구권제도이다. 우리 상법 제724조 제2항에서 이를 정하고 있다. 영국과 같은 경우 직접청구권은 아주 제한적이다. 피보험자가 도산이 된 경우에만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그러한 제한이 없이 아주 폭넓게 직접청구권이 인정된다. 
이러한 제도를 이용하면, 위 예에서 우리 정부는 지출한 비용을 행방불명인 선박의 소유자에게 청구할 것이 아니라, 책임 보험자에게 청구를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난파물제거의 문제에서 중요한 점은 정부가 대집행을 한 경우에 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책임보험에 입출항하는 선박이 가입이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의외로 P&I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선박도 많고, 또 보험에 가입된 금액이 얼마되지 않은 선박도 있기 때문에 문제된다.
이런 피해를 많이 입은 일본은 이미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제39조의5 제1항 제2호에 일본에 입출항하는 선박에 대하여 보장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난파물 제거비용의 회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난파물 제거의무 등 관련 규정은 해사안전법에 두었으면서도, 아직 입출항 선박에 대한 보험가입을 강제화하지 않고 있다. 조속한 시행이 요구된다.    

 

 적용되는 법률
우리나라 영해 이내의 해역에 대하여는 대한민국 정부가 관할을 가지므로, 공유수면관리법, 해사안전법 등 단행법의 난파물 관련 규정들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공해는 어떠한가? 배타적 경제수역에도 왕왕 난파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튜멘호 원목투하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동해와 울릉도 사이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튜멘호라는 선박에서 원목이 수천개 떨어져 항해에 지장을 준 사건이다. 
이러한 경우 어느 법에서 과연 이들 난파물제거를 규율하는가? 개항질서법은 개항의 안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해사안전법은 우리나라 영해이내에 적용되는 법이다.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공유수면 관리법은 우리나라 영해이내 뿐만아니라 영해의 범위를 벗어난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도 적용된다(제4조). 
튜멘호 사건의 경우 선박소유자는 대한민국정부는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난파물제거에 대한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고 항변하였지만 우리 법원은 대한민국정부의 관할권을 인정하여주었다. 


각국의 관할권이 미치는 범위내에서 입출항 선박에 대한 난파물제거에 대한 규율을 국내법을 통하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입출항을 하지 않는 선박에 대하여, 혹은 가입보험금액, 혹은 배타적 경제수역에 존재하는 난파물인 선박에 대한 연안국의 처리권한, 직접청구권의 인정 등에 대하여 통일화를 시킬 필요성이 있다. 이에 세계 해운국들은 IMO의 법률위원회를 통하여 난파물제거에 관한 국제협약(일명 나이로비 조약)을 만들어 시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에 가입하였다. 
난파물제거협약에 의하면 난파물 보고의무자는 운항자이지만(제5조), 난파물제거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1차적으로 선박소유자이고 2차적으로는 연안국이다(제9조). 제거비용을 부담하는 자는 난파물의 소유자이다(제9조). 


우리나라는 난파물제거협약의 중요한 내용을 국내 단행법인 해사안전법에 추가하여 입법을 완료하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나라 항구를 입출항하는 선박에 대하여 책임보험가입을 강제화하지 않고 있다. 제29조 제1항은 “해양수산부장관은 제26조제3항 및 제28조제3항에 따른 항행장애물의 표시ㆍ제거에 드는 비용의 징수에 대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선박소유자에게 비용 지불을 보증하는 서류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제29조를 시행하는 시행령을 만들지 않고 있다. 난파물제거에 대한 처리에 미비점이 있기 때문에 조속히 이를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세월호의 경우 우리 정부는 제거작업에 1000억원 가까운 비용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에서 설명한 바에 의하여 우리 정부는 책임보험자였던 해운조합에게 제거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임보험의 가입이 강제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유자었던 청해진이 가입한 난파물제거금액은 수십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전액을 회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일본의 법률이 정한 기준에 의하면 100억원 이상의 난파물제거 보험에 가입했을 것이고 우리 정부는 적어도 100억원은 회수가 가능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얻는 교훈의 하나는 난파물제거관련 책임보험가입을 입출항 선박에 강제화 시켜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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