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는 역사를 걸어 온 맏형은 격이 다르다” -보수성향 벗고 06년부터 선대확장과 3공장 추가 설비 등 과감한 투자 실현


5만평 규모 3공장 설립과 공기 단축으로 연산 24척 체제 구축
50년 넘게 입증된 사업 건전성, 신생사와 비교 ‘불가’

 

부산시 영도구에 위치해 있는 대선조선의 1공장 전경.
부산시 영도구에 위치해 있는 대선조선의 1공장 전경.
경쟁력 있는 중형조선소들이 한국 조선의 ‘장밋빛 인생’을 더욱 곱게 물들이고 있다.
그동안 세계 조선시장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 조선의 명성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조선소들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형급 기존 조선소는 물론 신조시장에 뛰어든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후발 조선소까지도 짧은 기간동안 ‘괄목상대’한 성장을 보이며, ‘막강 한국 조선’의 경쟁력을 가일층하고 있다.


중형조선소들의 이같은 성장은 그동안 중국시장만을 견제대상으로 보았던 업계 당사자에게도 짐짓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벌써 대형선 건조를 위한 채비를 끝내고 있는 곳도 있어, 기존 대형 조선소의 새로운 ‘필적’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중형조선소들의 ‘간판’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우려가 섞여 있었다. 빅3사가 일구어 놓은 한국조선에 대한 세계적 명성에 편승한 잠깐의 성장은 있을 수 있지만 머지않아 도래할 불황기에는 도산의 위험이 다분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와 같은 우려가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수주 실적면에서 놀라운 기세를 떨치며 상위랭크를 점하고 있는 몇몇 조선소들을 필두로 중형급 조선소들의 기분 좋은 약진에 한국조선의 현재와 미래가 더욱 밝아지고 있음이다.  
이에 시리즈 기획으로 새로운 한국 조선의 주역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형조선소를 직접 찾아가 그들이 뿜어내고 있는 경쟁력의 현장을 체험해 보기로 한다. 이번호는 그 첫 번째 기업으로 반세기 넘게 중형선 건조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선조선’을 찾아가 보았다.

 

1945년 창립 이래 조선관련 사업 ‘외길’
1957년 드라이독 건설로 신조 본격 진출
한국 조선이 세계 조선시장에서 1위로 등극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다. 바로 이때부터 국내시장에서도 조선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1위’라는 현주소로 자리매김하기까지에는 일찍이 조선 산업에 뛰어들어 불모지를 일구어 놓은 초창기 기업의 공로가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국내 대형조선소들의 상당수가 초창기 중소형 조선소 인수를 통해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조선의 뿌리는 초창기 중소형 조선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세계 1위라는 한국 조선의 현 주소에 초창기 중소형 조선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심에 바로 대선조선이 있다.


1945년 설립된 대선조선은 대선철공소로 개업한 이래 1954년 조선업 면허를 취득하고 1957년 드라이도크를 건설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신조선 사업을 시작한다.
한마디로 대선조선은 반세기가 넘는 지난 기간 동안 조선관련 사업만을 올곧게 걸어오고 있는 ‘조선전문기업’인 것이다.

 

특히 대선조선은 초창기에 함께 출발했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기업에 흡수되는 등의 풍파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반면, 사주와 사명 모두 흔들림 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보기 드문 기업으로 꼽히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더하고 있다. 대선조선은 전형적인 가족회사로서 현재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안강태 사장은 대선조선의 2대 사장으로서 창립자인 안성달 회장의 아들. 3대 경영자로는 現 안 사장의 아들인 안재용 씨가 현재 전무이사로 재직하며 후대를 이을 채비를 하고 있다. 


대선조선의 오랜 역사는 본사건물은 물론 야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산시 영도구의 아주 오래된 5층짜리 건물이 대선조선의 본사. 본사의 첫 느낌은 7-80년대 근현대사를 그리는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정취가 있었다. 본사건물 맞은편, 인도가 따로 없는 아주 좁은 2차선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선조선의 제 1야드가 위치해 있다. 현장을 본사 가까이에 두어 줄곧 현장을 챙기고자 한, 창업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그 옛날 바로 이곳에서 대선조선이 창업된 것이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세월을 비껴간 듯한 주변의 모든 분위기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지나온 세월과 함께 이제는 낡아버린 건물이지만, 그 척박했던 시절에 어렵게 시장을 개척했을 초창기 임직원들의 노고도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대선조선이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리한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워낙 불호황이 극명하게 나뉘는 산업이다 보니, 설비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자칫 회사의 운명을 달리하게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이 된다.

 

자칫 보수적인 기업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대선조선이 뿌리 내린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혜안이었던 것이다. 사실 정부정책의 힘을 입어 그나마 성장의 발판을 삼은 1990년대 조선소의 수혜자는 현대와 삼성, 대우 등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둔 대기업 그룹사였다. 이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계시장에 발을 내딛기도 전, 한국 조선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대선조선은 그저 평범한 개인사업자로서 조선업에 뛰어들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나간 것이었기 때문에 무리한 설비투자는 할 수 없었을 테고, 할 수 있었다하더라도 되려 독이 됐을 법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연산 4척 체제였다는 것은 50년간 지켜왔던 신중한 대선조선의 기업방침을 방증해 준다.

 

보수 성향 벗고 2006년부터 과감한 설비투자
연산 4척 체제서 최종 24척으로 확대 계획

현재 야심차게 조성중인 제3공장.
현재 야심차게 조성중인 제3공장.
지금의 시장상황은 그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 한국의 조선업계가 세계 조선시장 호황에 따른 수혜를 한껏 누리고 있는 최근, 대선조선은 바로 지금을 새로운 전환기로 삼았다. 2006년 하반기부터 선대확장과 제3공장 건설 등 과감한 투자를 실시하고 있는 것.
그 첫 번째로 1공장의 기존 플로팅 도크의 수용능력을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선대확장 개념으로 도입한 이 플로팅 도크를 통해 대선조선은 34K 핸디사이즈 벌크선 시장에 진입, 벌써 22척(8월 20일 기준)을 수주해 놓은 상태이다. 


여기에다 1, 2공장(2만8,316㎡, 6만1,988㎡)을 합한 것보다 더 큰 17만 8,513㎡(약 5만평)규모의 3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3공장은, 필요하고 가능한 만큼씩 차츰차츰 늘려오다보니 대지모양과 작업동선이 들쑥날쑥한 모습을 하고 있는 1, 2야드와는 달리, ‘계획도시’와 같이 설비의 수용능력은 물론 레이아웃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대선조선의 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제1공장 플로팅 도크 선대확장 등을 통해 지난해 이미 연산 10척 체제를 구축한 대선조선은 올해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3공장과 향후 공정단축 등을 통해 연산능력을 최종 24척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선대 확장한 플로팅 도크, 1, 2공장의 ‘심장부’
외주작업 포함 전 공정, 대선조선 관리하에 작업

이번 방문에서는 본사 인근에 위치해 있는 1, 2야드를 둘러볼 수 있었다. 대선조선의 주력선종은 1,000TEU 컨테이너선과 25K PC선, 33.5K~34K급 핸디사이즈 벌커선. 이중에서 1,000TEU 컨테이너선은 주로 1야드에서, 25K PC선은 2야드에서 주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1야드에서는 지금의 대선조선을 있게 했을, 1957년에 건설한 드라이 도크를 가장 눈여겨 보았다. 최근 발주되는 선대가 커지면서 100M 길이의 대선조선의 첫 드라이도크는 이제 블록조립 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간혹 특수선 건조에 사용되기는 한다지만, 도크가 조선소 설비 중 심장부에 해당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1공장의 심장부는 플로팅 도크로 이전해 갔다. 선대확장 계획에 의해 종전 6,000M.T.(리프팅 Capa)에서 작년 1만5,000M.T.로 확대한 이 플로팅 도크는 대선조선의 건조선대를 확장시켜 주는 등 경쟁력을 한층 높여주는 ‘효자노릇’까지 해주고 있다.


그동안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대선조선의 기업방침은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대부분의 조선소가 자사의 부지를 더욱 확보하기 위해 외주에 의해 작업되는 블록을 외주업체의 현장에서 각각 작업, 그 완성품을 납품받아 조립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대선조선은 모든 외주작업을 대선조선의 야드에서 진행한다. ‘대선조선 표’ 선박의 처음부터 끝을 대선조선의 관리 하에 진행한다는 취지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선조선은 선박의 품질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확신하고 자신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현장에서 작업하는 인력은 내·외주 직원들을 통틀어 1,400명 가량.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며 각자의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 손길들이 결국 대선조선의 경쟁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제 2공장의 도크에서는 25K PC선의 선미부분이 작업되고 있었다. 선박의 크기나 설계에 따라 공정기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선조선의 25K PC선을 기준으로 실질적으로 건조작업의 첫 작업인 스틸컷팅부터 인도 직전까지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이 작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도크에서의 작업. 도크에서의 작업은 약 2개월이 소요되는데 이 공정을 단축시키는 것이 최근 대선조선이 주력하고 있는 하나의 미션이다. 도크회전율은 매출과도 직결되는 조선소 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설비 건설이 진행 중인 제 3야드는 올해부터 부분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대선조선의 올 생산 목표는 14척 인도·매출 3,000억원 달성이다.

 

금융권, 대선조선 재무건전성 호평
3공장 ‘자가 부지’로 투자에 의한 부담 ‘無’
현재 중형조선소들이 성업 중이지만 지금 막 체제를 갖춘 여느 조선소와 대선조선이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자체 기본설계를 하고 있다는 점. 대선조선에는 80명규모의 디자인 파트가 별도로 있어 이곳에서 대선조선이 수주한 모든 선박의 기본설계를 도맡고 있다. 명실상부 ‘대선조선 표’ 배를 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반세기 동안 입증된 재무건전성으로 국내 어느 금융권에서나 RG(선수금환급보증)발급에 문제가 없는 것은 국내 여느 중형조선소와는 격이 다른 조선소임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형조선소, 특히 신생조선소들 중에는 많은 돈을 들여 설비를 완비해 놓고도 정작 RG발급이 수월치 않아 계약이 틀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피해를 은행에서 발주사에 대신 보상해 줄 것을 약정하는 일종의 지급 보증이기 때문에 해당 조선소의 건전성을 기본으로한 총체적 평가의 잣대이기도 하다. 대선조선 역시 최근 3야드 건설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자가 부지’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어서 재무건전성은 여전히 ‘이상 무(無)’이다.


최근 많아진 중형급 조선소들이 의식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선형 경쟁은 있을 수 있지만 사업환경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라며 호언한, 한 본사 직원의 자신감은 결국 여느 중형급 조선소와는 다른 시장의 시선과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계적 수출입항만인 부산항과 마주하고 있는 대선조선의 경쟁력은 부산하게 오가는 선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선업에 대한 자부심과 중요성이 시나브로 인식될 것 같은 분위기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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