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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판례연구
영해에 대한 무해통항(無害通航, innocent passage) 원칙의 의미
[573호] 2021년 06월 04일 (금) 13:29:51 이필복 komares@chol.com
   
이필복
부산고등법원 울산재판부 판사/
법학 박사

1. 서론
UN에서 1982년 채택된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및 1982년 12월 10일자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제11부 이행에 관한 협정(‘UN 해양법협약’, 이하 ‘협약’이라 한다)’은 오늘날 국제해양법의 기본법과 같은 지위를 가진다.1) 협약은 비준, 공포 등 절차를 거쳐 우리나라에서 1996년 2월 28일 발효되었다.
협약은 크게 3가지 유형의 항행원칙 내지 선박의 항행권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다. 즉 협약은 ①공해에서의 항행자유(航行自由/freedom of navigation, 협약 제87조 제1항 a호) ②타국 영해에서의 무해통항(無害通航/innocent passage, 협약 제17조) 그리고 ③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通過通航/transit passage, 협약 제38조)을 원칙적으로 모든 선박의 권리로서 보장한다.2) ①공해에서의 항행자유 원칙은 널리 ‘공해의 자유(freedom of the high seas)’ 이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공해 자유 이념의 근간을 이룬다.3) ②타국 영해에서의 무해통항 원칙은 영해 개념의 발달과 함께 형성된 전통적 원칙이다.4) 이는 항행의 자유를 최대한 추구하려는 세력과 영토주권을 해양으로 최대한 확장하려는 세력 간의 타협으로부터 유래한 원칙으로 설명된다.5) 마지막으로 ③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 원칙은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을 계속적이고 신속하게(continuous and expeditious) 통과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행하는 선박의 항행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이다.6) 통과통항 원칙은 UN 해양법회의에서 영해의 범위가 종래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됨에 따라 해협 통항을 보장받고자 하는 전통적인 해양선진국들과 자국의 영토 및 영해에 대한 국가관할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해협연안국들 사이 타협의 산물로서 성립하였다.7) 통과통항 원칙은 타국 영해에서의 무해통항 원칙보다 한층 선박의 통항 자유를 강화한 것이 특색이다.8)


우리 ‘영해 및 접속수역법(이하 ‘영해법’이라 한다)’9)은 대한민국 영해 내에서 외국선박의 무해통항권을 명시한다(제5조 제1항 본문). 또한 무해통항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행위의 유형을 열거하고(제5조 제2항),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일정수역을 정하여 외국선박의 무해통항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음을 규정한다(제5조 제3항). 외국선박이 무해통항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행위를 하거나 무해통항이 정지된 수역을 항행하는 경우 그 승선자는 처벌될 수 있다(제8조 제1항). 필자가 아는 한 종래 우리나라에서 무해통항에 관한 영해법 규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는 영해 내에서 어로행위를 한 중국 (꽃게잡이) 어선 사례들로서, 별다른 법리적 문제없이 유죄로 인정된 사례들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1. 5. 7. 선고 2017도9982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영해법위반 등 사안에서 무해통항 원칙에 관한 상세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하였다.


 
2.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가. 피고인은 팔라우공화국 국적의 기중기선(1,355톤)인 이 사건 선박을 이용하여 2015. 2. 초순경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에서, 2015. 8. 말경 부산 태종대 해역에서 각 침몰된 선박을 찾아 인양한 후 고철 등을 판매하여 이익을 취득하였다.
나. 검사는 피고인을 다음과 같은 공소사실로 기소하였다.

 

1) 영해법위반
피고인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2015. 1. 29.경 전남 진도군에 있는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된 선박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외국선박인 이 사건 선박의 선장으로 하여금 위 선박에 설치된 어군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해저를 조사하게 하였다.

 

2) 2015. 2.경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이하 ‘공유수면법’이라 한다)위반
피고인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2015. 2. 1.부터 같은 달 4일까지 전남 진도군에 있는 맹골수도 해역에서에서 이 사건 선박의 닻을 내려 선체를 고정시킨 다음 침몰된 선박에 남겨진 고철 등을 인양하는 작업을 하여 공유수면을 점용ㆍ사용하였다.

 

3) 절도
피고인은 2015. 8. 28.부터 같은 해 9. 3.까지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태종대 동방 2마일 해상에서 이 사건 선박에 장착되어 있는 쇄암봉(초대형 정)을 이용하여 바다에 침몰되어 있던 A선박 선체 등을 여러 차례 내리치고, 집게를 이용하여 파손된 피해자 B 회사 소유의 A선박 선체 및 위 선박에 선적되었던 피해자 C회사 소유의 철판(고철 무게 합계 51톤, 시가 510만 원 상당)을 인양하여 절취하였다.

 

4) 2015. 8.경 공유수면법위반
피고인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2015. 8. 28.부터 같은 해 9. 3.까지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태종대 동방 2마일 해상에서 위 선박의 닻을 내려 선체를 고정시킨 다음 침몰된 A선박과 화물을 인양하는 작업을 하여 공유수면을 점용ㆍ사용하였다.

 

5) 해운법위반
피고인은 등록을 하지 아니하고 2015. 2. 1.부터 같은 달 4일까지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된 불상의 선박에 있던 고철 601.848톤을 인양하여 2015. 2. 7. 부산남외항으로 운송을 한 후, 2015. 2. 11. 부산 감천항으로 운송하여 위 화물을 하역하였고, 2015. 8. 28.부터 같은 해 9. 3.까지 부산 태종대 동방 2마일 해상에서 침몰한 A선박 선체와 화물 51톤을 인양하여 2015. 9. 6. 부산항 N-2묘박지로 운송을 한 후, 2015. 11. 23. 삼천포항으로 운송하여 위 화물을 하역하는 방법으로 해상화물운송사업을 하였다.
다. 제1심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영해법위반의 점, 2회에 걸친 공유수면법위반의 점, 절도의 점을 모두 유죄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제1심법원은 해운법위반의 점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위 공소사실과 같이 인양한 고철들을 운송했던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두고 위 피고인이 해상화물운송을 ‘사업’으로 영위하였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로 판단하였다.10)


라.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과 검사가 모두 항소하였다.11) 피고인은 ① 영해법위반의 점과 관련하여 외국선박에 어군탐지기 등을 설치하여 영해의 해저를 조사하는 행위는 영해법 제5조 제2항 제11호 소정의 외국선박이 통항하면서 ‘조사’ 행위를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고, ② 공유수면법위반의 점과 관련하여 자신이 수상에서의 수색·구조 등에 관한 법률(이하 ‘수상구조법’이라 한다) 제19조에 따라 구난신고를 한 후에 침몰된 A선박과 화물을 인양하는 작업을 하였고, 구난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유수면을 점용·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공유수면법상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검사는 ③ 해운법위반의 점과 관련하여 피고인이 지속적으로 고철을 인양하여 이를 운송·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려는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고철을 운송하였으므로 ‘해상화물운송사업’을 하였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의 ① 주장에 관하여는, 제5조 제2항 제11호의 ‘조사’는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해저의 깊이나 조류, 유속, 해저환경, 해저의 생태계 등을 조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 결과에 이르는 행위’만을 의미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법리를 전제로 이를 배척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의 ② 주장에 관하여는, “피고인은 조난을 당한 선박과 그 선박에 실린 화물에 관한 원조를 위하여 이를 인양한 것이 아니라 위 선박과 화물을 절취하기 위하여 인양작업을 한 것이어서 실제로 구난을 하였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수상구조법 제19조 제1항에 따라 구난신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공유수면법위반죄가 성립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여 역시 이를 배척하였다. 또한 항소심 법원의 검사의 ③ 주장에 관하여는 제1심법원의 판단을 인용하여 이를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역시 이를 배척하였다. 결국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12)


마. 피고인과 검사는 대법원에 상고하여 각각 위 ①과 ③의 주장을 하였다(피고인은 ② 공유수면법위반 부분에 관하여는 상고이유를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은 ① 주장과 관련하여, 자신이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선박입출항법’이라 한다)에 따라 출입신고를 하였으므로 공소사실 기재 행위가 ‘외국선박의 통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더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검사의 항고이유가 모두 이유 없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확정).

 

3.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은 ③ 해운법위반의 점에 관한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하여는 제1심 및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수긍하여 이를 배척하였다. 대법원이 법리를 설시한 부분은 ① 영해법위반의 점과 관련하여 피고인의 행위가 ‘외국선박이 통항’하면서 ‘조사’행위를 한 때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피고인이 진도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된 선박의 위치를 찾기 위해 외국선박에 설치된 어군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해저를 조사한 것은 영해법 제5조 제2항 제11호의 ‘외국선박이 통항하면서 조사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판시사항]
1) 영해법 제5조 제2항의 ‘외국선박이 통항할 때’라고 함은 외국선박이 ① 영해를 횡단할 목적 ② 내수를 향하여 또는 내수로부터 항진할 목적 ③ 정박지나 항구시설에 기항할 목적을 위하여 영해를 지나서 항행하는 일체의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UN 해양법협약 제18조 제1항 참조), 외국선박이 선박입출항법에 따라 출입신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영해법 제5조가 규정하는 무해통항의 원칙은 연안국이 영해에서 갖는 주권과 외국선박의 해양에 대한 통행권을 조화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규범으로, 외국선박이 연안국의 내수를 향하여 항진하거나 연안국의 항구시설에 기항할 목적으로 항행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나) 선박입출항법에 따른 출입신고 제도는 무역항의 수상구역 등에서 선박의 입항ㆍ출항에 대한 지원과 선박운항의 안전 및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같은 법 제1조 참조), 외국선박이 영해를 항행할 때 요구되는 무해통항의 원칙과는 그 취지와 목적이 서로 다르다.
다) 따라서 외국선박이 선박입출항법에 따른 출입신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영해를 항행할 때에는 무해통항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2) 또한 영해법 제5조 제2항 제11호의 ‘조사’는 ‘해양의 자연환경과 상태를 파악하고 밝히기 위하여 해저면, 하층토, 상부수역 및 인접대기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체의 조사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 경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 외국선박의 영해에서의 무해통항권은 연안국의 주권에 대한 제한을 의미하는데 연안국의 주권에는 자원개발권, 환경보호권, 과학조사권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무해통항의 요건으로서의 ‘무해성’에는 위와 같은 주권적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나) 영해법 제5조 제2항 제10호의 ‘어로(漁撈)’의 경우 그 자체로는 연안국의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지 않는 경우에도 주권의 중요한 내용인 어업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무해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다.
다) UN 해양법협약 제21조 제1항 (g)호는 연안국이 무해통항과 관련하여 ‘해양과학조사와 수로측량’에 관한 법령을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245조는 영해에서의 해양과학조사는 연안국의 명시적 동의를 얻어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연안국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은 영해에서의 조사활동은 실질적으로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허용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라) 그뿐만 아니라 외국선박이 영해에서의 조사활동을 통하여 해양의 자연환경과 상태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이러한 정보는 향후 연안국의 평화와 안전을 해하는데 활용될 위험성이 있으므로, 조사활동 당시의 목적이 그렇지 않다고 하여 대한민국의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4. 검토
가. ‘무해통항’의 의미
1) 영해법과 협약상의 무해통항 원칙

우리 영해법상 무해통항에 관한 규정은 UN 해양법회의의 논의 경과와 협약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선박은 대한민국의 평화·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한민국의 영해를 무해통항(無害通航)할 수 있다”고 정한 영해법 제5조 제1항 본문은 협약 제17조, 제19조 제1항에, “외국선박이 통항할 때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평화·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 것으로 본다. 다만 제2호부터 제5호까지, 제11호 및 제13호의 행위로서 관계 당국의 허가·승인 또는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12개 행위 유형을 열거하는 영해법 제5조 제2항은 협약 제19조 제2항에 각각 대응하여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규정한다.13) 협약 제19조 제2항은 연안국이 자의적으로 무해여부를 판단하여 무해통항을 부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유해한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유형을 열거한 것이므로, 영해법 제5조 제2항 각 호의 행위유형 또한 한정적인 열거 조항으로 해석된다.14) 그런데 협약 제18조가 ‘통항(通航. passage)’의 의미에 관한 정의규정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영해법은 통항의 의미에 관한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약간의 불명확함이 남아 있다.15) 대상판결은 협약 제18조의 규정을 인용함으로써 영해법상 ‘통항’의 개념을 분명히 하였는데, 이는 영해법의 제정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또한 대상판결이 선박입출항법에 따른 출입신고는 무해통항 원칙과 무관하다는 법리를 선언한 것은 타당하다.

 

2) ‘통항’의 의미
대상판결이 정당하게 판시한 바와 같이 ‘외국선박의 통항’은 외국선박이 ① 영해를 횡단할 목적 ② 내수를 향하여 또는 내수로부터 항진할 목적 ③ 정박지나 항구시설에 기항할 목적을 위하여 영해를 지나서 항행하는 일체의 경우를 의미한다(협약 제18조 제1항). 이때 통항은 계속적이고 신속하여야(continuous and expeditious) 한다(협약 제18조 제2항 본문).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자신의 행위가 ‘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이 사건 선박이 영해를 계속적이고 신속하게 지나간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머물렀으므로 ‘통항’ 자체에 해당하지 않아 영해법위반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이에 대하여 “만약 피고인이 주장하는 법률해석에 따르면, 외국선박이 계속적이고 신속하게 영해를 지나가면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관계 당국의 허가·승인 또는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외국 선박이 영해에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관계 당국의 허가·승인 또는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매우 부당”하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협약의 문언과 체계를 고려하면, 피고인의 위와 같은 주장과 그에 대한 위와 같은 판시는 다소 어색하다. ‘무해통항의 원칙’은 타국의 영해에서는 선박이 계속적이고 신속하게 ‘통항’하는 경우에만 항행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통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는 당연히 영해법위반을 구성한다. 즉 영해법 제8조 제1항은 ① 영해 내 외국선박의 항행이 ‘통항’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② 영해 내 외국선박의 항행이‘통항’에는 해당하나 ‘무해성’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그리고 ③ 외국선박이 무해통항권의 행사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수역(영해법 제5조 제3항 참조)을 항행한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해석된다.16) 그러므로 예를 들어 외국선박이 영해 내에서 정선(停船, stopping)·투묘(投錨, anchoring)하거나 배회(徘徊, hovor or cruise around)하는 경우에는 통항에 해당하지 않고, 이는 위 ①의 경우로서 항행의 ‘무해성’ 여부를 살펴볼 필요 없이 바로 영해법위반을 구성한다.17) 다만, 정선이나 투묘 행위가 통상적인 항행에 부수되는 경우, 불가항력이나 조난으로 인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위험하거나 조난상태에 있는 인명·선박 또는 항공기를 구조하기 위한 경우에는 통항에 포함된다(협약 제18조 제2항 단서). 항소심 법원으로서는 이 점을 분명히 판시하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18) 

 

3) ‘무해성’의 의미
‘무해성’이란 통항이 대한민국의 평화ㆍ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한다(협약 제19조 제1항, 영해법 제5조 제1항). 대상판결은 영해법 제5조 제2항 각 호에서 정한 행위는 그 내용이나 태양이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평화·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영해법의 문언과 체계상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영해법 제5조 제2항은 동조 각 호에서 열거한 행위가 그 자체로서 ‘대한민국의 평화·공공질서 또는 안전보장을 해치는 것’, 즉 유해성 있는 행위로 간주된다는 취지이지 그 내용이나 태양에 어떠한 조건이나 제한을 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조사 또는 측량’(제11호)의 경우에는 사전에 관계 당국의 허가·승인 또는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허용된다(제5조 제2항 단서). 학설로는 ‘조사 또는 측량’의 일환으로서 수심이나 조류를 측정하는 경우 그 목적 자체가 안전항행을 위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무해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19) 그러나 현행 영해법의 문언상 이러한 해석론이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나. ‘외국선박’과 편의치적선 문제
이 사건 선박은 팔라우공화국에 국적을 두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이 사건 선박이 편의치적선인지 여부가 문제되지 않았고, 판결에 드러난 사실관계 상으로도 이 사건 선박이 편의치적선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편의치적(便宜置籍, Flags of Convenience)이라 함은 선박의 소유자가 주로 자국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세무, 노동, 해운정책 등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다른 국가에 선박을 등록하여 그 국가의 국적을 유지하는 관행을 말한다.20) 만약 이 사건 선박이 편의치적선이었고 그 실질적 관리·사용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피고인은 이 사건 선박이 ‘외국선박’에 해당하지 않음을 주장하여 영해법위반의 점을 다툴 수 있을 것인가? 외국선박의 영해 내 통항을 규율하려는 영해법 해당 조항의 입법취지를 고려한다면, 이 사건 선박이 실질적으로 한국선박이고 피고인도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선박이 외국에 선적을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영해법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실제 현상과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편의치적에 의한 국적 취득의 유효성에 관한 국제법적 쟁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국제해양법재판소(國際海洋法裁判所, International Tribunal for the Law of the Sea/ITLOS)는 “협약 제91조 제1항 3문에서 기국과 선박 사이의 진정한 관련(眞正한 關聯, genuine link)을 요구하는 것은 기국의 의무가 더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국가가 그 선박등록의 유효성(有效性, validity)을 다투는데 참고할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21) 이는 편의취득에 의한 국적 취득의 유효성을 지지하는 것이다.22) 우리 법에 의하더라도 사법(私法) 상의 법률관계에 있어서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국제사법 제8조에 의하여 편의치적국의 법 대신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른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될 여지가 있음은 별론,23) 행정법이나 형사법 적용의 영역에서는 편의치적에 의한 선박의 외국국적 취득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함이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4) 따라서 피고인으로서는 설령 이 사건 선박이 편의치적선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 선박이 ‘외국선박’이 아님을 이유로 영해법위반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부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 공유수면법위반과 해운법위반 관련
이 부분 각 공소사실과 관련하여서는 특별한 쟁점이 없으므로 간략히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간다.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공유수면법위반의 점과 관련하여, 자신이 수상구조법 제19조에 따라 구난신고를 한 후에 침몰된 A선박과 화물을 인양하는 작업을 하였고, 구난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유수면을 점용·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공유수면법상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피고인이 수상구조법상 ‘구난’, 즉 ‘조난을 당한 선박 등 또는 그 밖의 다른 재산(선박 등에 실린 화물을 포함한다)에 관한 원조를 위하여 행하여진 행위 또는 활동’(수상구조법 제2조 제9호)을 하기 위하여 공유수면을 점용·사용한 것이라면 피고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이미 침몰된 A선박과 화물을 인양하는 작업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위와 같은 ‘구난’을 한 것이 아니다.

 

결국 피고인이 수상구조법상 구난신고를 하였다는 사실은 공유수면법위반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편 검사는 피고인이 지속적으로 고철을 인양하여 이를 운송·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려는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고철을 운송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 해운법위반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해상화물운송사업’이란 ‘해상이나 해상과 접하여 있는 내륙수로에서 선박으로 물건을 운송하거나 이에 수반되는 업무를 처리하는 사업’을 의미한다(해운법 제2조 제3호). 피고인이 설령 계속적으로 고철을 인양하여 운송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이 고철을 인양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데 수반되는 행위에 불과하고 피고인이 위 행위를 사업으로서 할 의사나 그러한 실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없다. ‘해상운송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해운업의 건전한 발전과 여객·화물의 원활하고 안전한 운송을 도모한다’는 해운법의 입법취지까지 고려하면, 검사가 피고인을 해운법위반의 점으로 기소한 것은 다소 무리한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결론
대상판결은 우리 영해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해통항의 원칙의 의미에 관하여 판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영해법위반죄가 문제되는 사례가 앞으로도 드물 것이기에 대상판결은 희소성 있는 귀한 판결이다. 우리 영해법 제5조는 외국선박의 무해통항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협약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통항’의 의미에 관한 협약 제18조와 같은 정의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대상판결은 ‘통항’의 의미에 관하여 협약의 내용을 수용함으로써 일종의 입법공백을 보충한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입법론적으로는 무해통항과 관련한 영해법상 처벌대상인 행위의 내용이 보다 명확히 규율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현행법 하에서는 문언의 어색함으로 말미암아 체계적, 역사적 해석에 의해 법문의 내용이 확정되어야 한다. 이는 형사벌의 근거규정으로서는 적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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