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의 붕괴가 수반한 파괴력은 실로 대단하다. 금융대란은 진원지인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을 통해 중국, 아시아 등 전세계에 그 파장을 일으키며 산업전반을 강타했다. 금융이 휘청거리자 세계의 경제활동이 일제히 침체되고 그로인해 해운과 조선까지 맥을 못추고 동반붕괴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특히 해운산업의 침체는 금융위기에서 파급된 세계 교역물량의 급감으로 그 강도가 더욱 혹독하다. 불과 수개월만에 시황이 90%이상 떨어지자 해운업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일부 국가와 선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적인 현실이다. 일부 선진 해운국들의 상황이 비교적 낫다고 하지만 그동안 중국효과로 크게 증대한 전세계 선복은 ‘급감한 운송수요’와 ‘운임폭락’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갑자기 찾아온 불황의 사자(使者) 앞에서 일부선사가 도산하고 벌크선박의 정선(停船)과 계선(繫船)이 줄을 잇고 있다. 믿을 만한 소식통은 이미 100여척의 케이프사이즈 선박이 운송화물을 찾지 못하거나 저운임에 운항을 포기하고 계선을 선택했으며 그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계선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소문은 들려오지만 상황을 공표할 선사가 없는 까닭이다. 요즈음 대규모의 계선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해운업계가 경험했던 탱커선박의 계선사태 이후 처음이며 최대 규모이다.


해상화물 급감의 영향은 벌크부문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부문에서도 심각한 상황으로 번져가고 있다. 유럽항로에서 시작된 운송물량의 급감과 운임폭락 사태는 북미항로 등 주요항로에서 지역간 항로로까지 파급되는 상황이며, 내년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정기선사들은 이미 얼라이언스와 개별선사별로 선복감축 운영을 위한 잇딴 항로합리화 작업으로 비용절감 체제의 비상국면에 돌입했다. 컨테이너선의 경우도 선복을 감축한 항로합리화가 지속되면서 내년 1월말경에는 170여척이 계선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향후 시황전망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부양정책에 따라서는 6개월-1년내에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입장과 침체상황이 심각하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누구도 자신있게 앞날을 점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호황기에 체결되었던 신조발주 계약건도 취소사례가 드러나는 가운데 철강업계가 케이프 및 파나막스 선박만해도 300여척의 발주취소를 전망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이는 최근 잇딴 세계적 철강업체의 감산계획 발표와 세계적인 신용장(LC) 발급난, 선박금융 중단에 근거한 것이어서 설득력이 있다. 신조발주의 취소 사태에 대해서는 그간 과열되었던 해운시장을 식히며 오히려 해운불황의 장기화를 방지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과잉선복의 우려를 해소하고 보다 적정한 선복을 가져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기엔 피해규모가 너무 클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간 해운업계가 구가했던 사상초유의 해운호황에는 ‘투기자금’의 유입에 따른 ‘거품’도 큰 몫을 했다.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투기자금들이 금융붕괴 상황에서 급회수되면서 벌크시황의 하락세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도를 냈고, 운송수요 급감까지 더해졌으니 해운시장의 붕괴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해운시장에 깊숙이 개입한 투기자금 때문에 FFA시장의 붕괴피해가 치명적이며, 해운업계에 만연한 용선과 대선이 맞물린 ‘용선망(Chater Chain)’의 ‘과도한 확대’가 불황의 수렁을 더욱 깊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별선사의 상황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소문만 무성해 피해규모와 내용은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선박금융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고선 도입이든 신조발주든 금융이 악화되자 중도금 상환의 문제와 신조금융의 마비상황이 발생, 많은 선사들이 헐값에 배를 매각하거나 신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상의 상황은 세계 해운업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어려움이며, 우리선사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일부 국적선사는 환율변동에 따른 파생금융상품의 예상치 못했던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고, 주요선사들도 환율변동이 극심한 지금 외화환산회계제도의 문제점으로 재무건전성 왜곡이 우려돼 이의 개선이 추진 중이다. 2007년말 938원이던 환율이 계속 올라 올해 평균환율을 1,250원으로 잡더라도 우리 해운업계는 3조 2,760억원이라는 막대한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외화환산제도에 따른 미실현 평가손실은 선사들의 부채비율을 급상승시켰다. 올해 6월 1,043원대와 비교해도 주요선사의 부채비율은 최고 300%-2,324%까지 급증할 것이 예측된다. 문제는 외환환산손실에 따른 재무제표의 심각한 왜곡현상이 대부분의 선사들을 '장부상' 적자기업와 고율의 부채기업으로 낙인함으로써 국내외 신인도가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왜곡된 재무제표와 영업실적에 따른 국적선사들의 신용등급 악화는 장기계약 취소와 운임인하 요구 등 국내외 화주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금융부문에서는 금융조달비 급상승과 선박금융 조기상환 압박, 신규대출 제한 등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특히 외국금융기관에 국적선사의 신용 재평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면, 진행 중인 모든 건조선박에 대한 외국 금융기관들의 약정취소나 감내하기 힘든 조건 변경요구로 막대한 추가이자를 부담하게 돼, 선사들의 어려움은 눈덩이처럼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에 선주협회는 금융감독원에 외화환산제도의 개선을 강력하게 건의하고 선사들의 고충 덜어주기에 발벗고 나섰다. 만약 현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금융권의 계약해지와 선박압류, 금리 재협상 등으로 장기설비 투자의 기반와해는 물론 국적선사들의 존립자체가 위협받는 지경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외화환산제도의 경우 최근 조선업체의 환헤지 회계처리 변경과 중소기업의 장외파생상품(키코 등) 회계처리 변경, 금융상품 시가평가제 완화 등의 개선사례가 있어 개선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금감원도 개선방안을 모색하느라 고심 중이라고 전해진다. 기왕에 개선할 것이라면 失期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부는 해운산업이 석탄과 철강, 가스 등 국가 전략물자를 수송하는 국민경제의 기반이 되는 산업임을 다시금 깨달아야만 한다. 만약 제도상의 문제가 시급히 개선되지 않아 이 불황속에서 신인도가 하락하고, 금융압박이 지속된다면 국가 에너지 수급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울러 선사의 금융경색은 선박건조의 중단으로 조선업의 동반붕괴를 초래할 수 있어 어떠한 형태로든 정부의 해운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다급하다.


세계적인 금융대란 속에 우리 은행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경색된 금융흐름을 터주고 왜곡된 제도를 개선하는데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해운산업이 붕괴되어도 과연 우리국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수송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수출화물의 안정적인 수송이 담보될 수 있을지, 熟考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해운업계는 지금 정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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