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기도와 해운위기
해운업계의 기반을 흔들만한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 논의가 이루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해운인들은 너나없이 우리나라 해운의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음을 절감하며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하며 혼신을 다해 그 기도를 저지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해운불황으로 인해 기진맥진하고 있는 해운업계의 목을 조이는 치명적인 조치로써 이를 극력 반대하며 논의 자체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에 관해서는 공청회에서 논의되어 지상을 통해 이미 보도된 바 있어 상술하지 않겠으나 해운업계로선 중차대한 사항이라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해운법 제24조 제4항에,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같은 대량화물의 화주가 대량화물에 대한 해상화물운송사업을 등록신청 하면 국토해양부장관은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등록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 조항이 공정거래법에 어긋나기에 정부가 이번에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폐일언하고  하필이면 우리 해운업계가 기사회생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논의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해운기업을 기사회생시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연후에 거론해도 늦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혹시 이렇게 정신 못차릴 정도로 어려울 때 속전속결로 처리하겠다는 속셈은 아닐까.

 

둘째는 공청회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자기 물건 자기가 싣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는 것은, 그 물건은 보통 화물이 아닌 국책 대종화물이며, 또 세계적 추세인 제3자물류를 외면하고 굳이 1자물류 내지 2자물류로 가자는 것은 이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인가. 1자와 2자물류가 3자물류에 비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인정한 사실인데도 말이다. 이는 3자물류를 지향하며 지원하는 정부의 물류정책과도 배치된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분업과 전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국부론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해운업에 진출하려는 대량화주의 주장에 동조하여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걸맞는 논리를 개발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셋째, 대량화주가 인더스트리얼 캐리어가 되어 직접 해운업에 뛰어들었을 때 실익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전문해운업체 보다 코스트를 다운시켜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겠는가. 자가화물운송업자가 전문운송업자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이미 발표됐고 실지로도 증명됐다.


비능률로 인해 이내 문을 닫아야 했던 인더스트리얼 캐리어 호남탱커와 거양해운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버스나 트럭을 가지고 자기 직원과 화물을 수송하는 자가운송인과 타사 화물과 승객을 수송하는 전문운송인과의 채산 즉 경제성을 따져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석유 제철 전력 가스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포스코 한국전력 가스공사 같은 대량화주는 대량화물 시장점유율이 100%에 가까운 과점기업이다. 이들이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로서 시장에 나오면 전문해운업체들은 설 땅을 잃고 해외로 빠져나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 후에 자가운송인들은 제품원가에 운송비를 마음대로 전가할 수 있고, 최종소비자인 국민들이 이를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비능률이며 국민경제에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인더스트리얼 캐리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외국의 전문해운선사와 경쟁하여 불리해지면 대기업의 속성상 하루아침에 경쟁력이 없어진 해운업을 포기하여 우리나라 해운업은 공동화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항만에는 우리 대종화물을 실어 나르라 분주한 외국선들만 북적거릴 것이다. 섬나라와 다름없는 우리나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전선이 바로 코앞에 있고, 부존자원이 없고 무역의존도가 80%가 넘어 이를 적기수송하지 못하면 국민경제가 파탄이 나는 나라이다.


상선은 제4군이요 해운업은 국가 필수산업이라는 사실을 전쟁을 통해 누차 경험했다. 이런 해운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각국은 이를 꾸준히 보호 육성해 왔다. 행여 다른 나라가 이를 문제 삼을까봐 보이지 않게 은밀히 지원해 왔다.


우리의 경쟁상대 일본은 해운업체에 대한 자율상각제, 이자보급제, 계획조선, 지정입찰제 등 교묘할 정도로 정부와 화주단체 무역업체가 한통속이 되어 해운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해운업이 국민경제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에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 얼마전 어떤 대량화주는 대종화물 장기운송 입찰에서 갑의 특권을 내세워 국적선사에 낙찰된 것을 포기하고 재입찰하여 일본선사와 계약하는 행위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더구나 일본 제철업계는 감산으로 인해 충분한 물동량을 일본선사에게 제공하지 못하자 저운임으로 제3국 시장에 진출하게 하고 그 손해나는 부분을 보전해주는 지원제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이 이러한데 우리의 실정은 마치 물에 빠져 나무토막을 겨우 잡고 허우적대는 사람의 나무토막을 빼앗는 꼴이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현재 큰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세계 7위를 기록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일본과 유럽의 해운업체들이 우리를 부러워 할 정도로 정부 당국도 정책적인 뒷받침을 잘 해 주었다. 예를 들어 웨이버제도 계획조선 톤세제도 국제선박등록제도 선박금융제도와 같은 제도적 토양 위에서 한국해운이 성장 발전해 왔다. 아무쪼록 곤경에 처해 있는 해운산업을 차제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번 시도를 포기하기 바라며, 국토해양부의 적극적이고도 전방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이것이 국토해양부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동안 해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힘써준 국회의원 모임인 바다포럼에도 기대를 건다. 해운업계도 지금은 위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누가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이를 막아내야 할 것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
8월의 무더위 속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휴가철 추천도서 정진홍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읽었다. 직(職) 보다는 업(業)을 중시하는 저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스토리텔러답게 고금동서를 누비며 무궁무진한 소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대학이 직업교육 위주로 나아가고 학생들도 인문학 과목을 외면하여 폐강되는 등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이 책은 인문학의 가치를 우리에게 재인식시켜 주었다. 그는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정요(貞觀政要)’로 시작하여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으로 끝냈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면면히 등장한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물질이 필요하나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은 정신이며 이것이 없다면 삶의 질은 황폐해진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고찰하여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학문이 인문학(人文學)이다. 사람이 짐승과 기계와 다른 점은 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지식인들이 모여 이 처절한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었으며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신념의 대립과 그의 종착점은 전쟁이며 합리적인 실용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념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인간다운 삶의 질적 향상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정신 즉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청교도정신(puritanism) 개척자정신(frontier spirit)과 함께 미국의 3대 정신적 지주가 된 실용주의(pragmatism)는 경험과 실험정신을 강조하며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 미합중국을 버티고 있는 힘은 그들의 정신 속에 실용주의와 법치주의 합리주의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남북전쟁을 통해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거듭났다. 선진국은 자원 즉 물질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 즉 인문과 정신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했다.

 

자원전쟁에서 말하듯 물질의 풍요가 행복은 아니며 이를 오남용하면 향락과 퇴폐로 이어져 자원의 저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명멸했던 수많은 나라들을 들어 이를 증명해냈다. 경쟁자와 적이 있을 때는 발전하였으나 오랜 평화와 물질적 풍요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서막이라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기업이나 국가나 이를 잘 경영하려면 상응한 원칙이 있다.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당태종의 정관정요와 유성룡의 징비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백성의 마음을 읽어야 하고 세상이 평안해도 위태로울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는 국가나 개인이나 기업이나 모두에게 중요하다.


해운업체들이 지난 5,6년간 종전에 없는 호황을 누렸으나 요즘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실하던 중견 해운업체들이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몇몇 선주들은 해운업을 접고 있다. 이런 시련을 겪으며  호황때 불황을 대비하지 못한 자탄의 소리도 들린다. 선진해운국들은 경험을 통해 이미 체득했다.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지혜이다.

 

한글과 장인정신 그리고 세계화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 세계 최초로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하여 한글로 표기된 교과서를 만들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셀레베스) 주 부톤 섬 바우바우 시는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선택하고 초등학생들에게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를 나눠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또한 인근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어 초급 교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언어는 있지만 표기할 문자가 없어 자칫 고유 언어를 잃어버린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이제 한글을 통해 문자로 전승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찌아찌아족들의 일상생활에 한글이 얼마나 녹아들고 활용될지는 모르겠으나 정부도 이를 계기로 우리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이를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모든 말과 소리를 담을 수 있고 외국어와 생물과 자연의 소리도 표기할 수 있도록 만든 우수한 언어이다. 모든 소리를 옮기고 외국어들과 의성 의태어를 표기하는데 한글 보다 편리한 글자는 거의 없다. 다른 나라의 워드프로세서를 써본 사람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홀대를 받고 있는 과목이 제2 외국어이다. 예전에는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던 독어, 불어도 찬밥이다. 영어의 물결에 이들 언어들도 휩쓸려 가버렸다. 하물며 한국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어를 쓰는 민족이 남북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싶다. 교포들까지 우리말과 글을 잘 안 쓰는 판국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이 한글로 자기나라 언어를 표기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이 인식되어 이를 쓰는 나라와 민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지구상의 오지에 있는 소수민족들에게 많이 보급되었으면 하며, 우리에겐 문화적 우월감 보다 이웃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나눔의 정신이 필요하다. 

 

9월이 오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국장이 국민들의 애도 속에 8월 23일 거행되었다. 장례식을 지켜보며 양수리 두물머리가 생각났다. 두 개의 큰 강이 서로 만나 소용돌이치다가 이내 하나의 물길로 합쳐져 도도히 흐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념과 실용, 산업화와 민주화. 대한민국 근대사의 한 변곡점에 서 있던 DJ. 하의도에서 빈농으로 태어나 재주를 아까워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회지인 목포로 나오고 정치에 입문하여 서민 편에 서서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외치다가 갖은 박해와 옥고를 치르며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까지 이른 그의 정치 역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직도 진행 중인 보혁과 동서 갈등, 남북대치....... 이번에 지도층이 병문안과 조문을 통해 위로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모처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화해와 통합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막혔던 물꼬가 트여 서로 사랑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희망찬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행동하는 양심을 부르짖은 그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리라.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은 미국인 갑부 로버트(록 허드슨 분)가 어느 9월 이탈리아의 별장에서 그곳 아가씨 리사(지나 롤로브리지나 분)와 사랑을 나누다가 오해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영화라고 한다. 멋쟁이 로버트의 세련된 매너와 이탈리아의 파란 하늘처럼 깊고 시원한 리사의 눈동자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화이다. 9월에는 여름내 쪼인 뜨거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으로 많은 열매가 맺힌다. 파란 하늘에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고 지붕 위에 호박이 커가며 텃밭엔 고추가 빨갛게 영그는 가을의 문턱 9월. 가을은 열매가 있기에 풍성하다. 여름내 땀을 흘린 농부가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중앙아시아의 초원, 고비와 타클라마칸 사막 눈덮인 천산산맥 바이칼호......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채경석의 장편소설 ‘칭기즈칸의 칼’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는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여한 산악·여행 마니아로서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와 몽골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광활한 초원 모래바람 부는 사막 눈덮인 천산산맥, 심장과 자궁처럼 초원을 적셔주는 바이칼호...... 역사상 가장 광활한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태동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기이한 신탁에 의해 태어난 주인공 보테킨이 납치된 여동생을 찾고 대칸에게 칼을 전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단을 따라 여러 곳을 다니며 겪는 얘기들이 흥미진진하다. 보테킨과 함께 몽골에서 간다라까지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초원을 지나고 사막을 횡단하고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나며 중앙아시아를 누볐다. 수많은 나라의 산과 강, 마을과 사람들.......그들과 나누는 얘기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다. 올 여름은 보테킨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중앙아시아를 마음껏 여행하였다. 수많은 부족들 민족들을 시공을 초월해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삶속 깊숙이 빠져들었다. 독서가 주는 기쁨이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