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를 새로이 그린 American P&I Club 18년만에 매출 2,000만달러에서 1억 9,500만달러로 성장

 
 

“Look, guys! 이 클럽이 사업을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재보험계약을 바꿔야 한다고. 지금 재보험에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니까.”

 

1977년에 가입톤수가 500만톤이었던 American Club은 새 항로를 그리게 된 1995년까지 18년 동안 가입톤수는 390만톤에서 510만톤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우리도 P&I Club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던 그 시절은 국제 P&I보험시장에게는 엄혹한 시기였다. 적자가 급증하면서 1990년 갱신 때 215%의 추가보험료를 부과했던 Swedish Club은 1991년에도 75%의 추가보험료를 부과했다. West of England Club은 1990년에 125%, 1991년에도 95%의 추가보험료를 부과했다. London Club은 1990년에 85%, 1991년에도 55%의 추가보험료를 부과했다. 대부분의 IG Club들이 살아남기 위해 큰 폭의 추가보험료를 부과하던 시기였다. 
P&I보험자간 경쟁이 격심해지면서 1984년에 Oceanus가, 1990년에는 Sunderland가, 1998년에는 Newcastle이, 1999년에는 Ocean Marine이 사업을 접었다. Korea P&I Club이 설립된 해인 2000년에는 타이타닉호와 퀸메리호의 P&I Club이었던 119년 역사의 Liverpool & London이 문을 닫았다. New York Times가(1992년) “더는 철통같이 충성스러운 고객이란 없다. 이제는 신사적인 경쟁이란 없다”라고 하던 시기였다. 
1983년에 American Club의 재보험비용은 300만달러였는데, 재보험자가 갑인 시장으로 전환되자 1987년에는 재보험비용이 650만달러로 급증하였다. 높은 재보험비용은 Club의 보험료율, 평판 및 신규 비즈니스 유치 능력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소형 Club이던 American Club은 미국선주들의 필요로 살아남긴 했지만,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보험비용을 줄이고, 가입선대를 늘리고, 외국선대를 늘리고, International Group(이하 ‘IG’)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20년간 American Club의 경쟁력을 깎아먹은 것은 높은 재보험비용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보험자를 변경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1980년대에 American Club의 재보험자는 Lloyd’s였는데, 재보험자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재보험에서는 충성도가 매우 중요하고 재보험 리더의 힘과 역량과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Club의 실적이 나쁠 때 재보험 리더의 지지는 매우 중요하다”며 재보험자의 변경을 반대하는 브로커의 의견을 극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87년에 American Club은 새로운 길을 가기로 하고 2단계 계획을 세웠다. 먼저 한 IG Club과 재보험계약을 한 다음 이를 통해 IG Pool에 들어갈 길을 찾아본다. 이에 성공하면 IG Pool 정회원 가입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수립한 지 11년 후에 American Club은 IG Pool 정회원이 된다.
1987년에 American Club은 Britannia, Gard, London Club을 재보험자 후보로 하여 순차적으로 접촉하였다.
Britannia가 먼저 거절했고, Gard도 China P&I와 공동인수사업을 하고 있다며 거절했다. 다행히 London Club은 마침 사업확장에 진심이어서 American Club의 재보험자가 되면 즉시 미국선대가 유입되고 재보험료 수입도 상당하리라 생각해서 긍정적이었다.

 

London Club과 재보험조건에 대해 협상하던 1987년까지는, 이 해에 Japan Club이 IG Pool 정회원이 되었는데, 회원 Club간 서면협정서는 없었고, 반 장짜리 gentlemen’s agreement로 규율했는데 이는 1987년에 International Group Agreement(이하 ‘IGA’)로 대체된다. EC의 반경쟁 담당부서는 IGA가 경쟁법에 저촉되는지 조사한 후, 경쟁법 적용을 면제하기로 한다. American Club이 IGA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미국정부의 IGA 승인이 필요했다.
1987년 12월 IG는 American Club이 IGA에 구속될 것을 조건으로 American Club과 London Club과의 재보험계약(재보험회원 형태로 Pool 이용)을 승인하는 한편, 미국정부가 IGA를 승인할 때까지 임시로 London, UK, West of England 및 Steamship 4개 Club이 연합하여 Pool과는 상관없이 재보험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담보한도는 IG Club처럼 무제한이 아니었지만 제시된 재보험료는 500만달러였다. Lloyd’s의 재보험료 650만달러보다 유리했고 담보한도도 높았다. American Club은 이 제안을 수용하였다.
미국 법무부는 미국의 상선법(Merchant Marine Act of 1920, 일명 Jones Act; 46 USC App Ch. 24)에 ‘해상보험자간의 공동행위에 대해 경쟁법 적용을 면제한다’는 규정(885조 Association of marine insurance companies; application of antitrust laws)이 있고, IGA로 인해 선주는 더 낮은 보험료를 부과받게 되며 American Club도 IGA 회원이 되는 것이 이익이다는 설명을 수용하여 IGA를 승인하였다. 1988년 12월이었다.

 

이로써 American Club은 1989년 2월부터 London Club을 재보험자로 하여 IGA의 ‘재보험회원(reinsured member, 준회원)’ 지위를 얻게 된다. London Club을 통해서이긴 하나 무제한의 담보한도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American Club은 나중에 “만일 이때 IG 재보험회원이 되지 못했다면 독립적인 보험자로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989년 2월에 IG 재보험회원이 되자 가입선대는 390만 톤으로 뛰었고, 1993년에는 510만톤으로 증가하였다.
American Club은 IG 재보험회원이 되자마자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Pool 정회원 가입을 추진하였다. 1989년 2월 첫 IG Pool 정회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IG는 “다른 재보험회원은 Pool 정회원이 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라면서 거절하였다. 1990년의 두 번째 신청도 IG는 거절하였다. 별다른 이유 설명도 없었다. 1993년의 세 번째 신청도 IG는 거절하였다. 1994년 6월에 네 번째로 신청했다. 이번에 IG는 American Club에 가입한 선박 1,100척 중의 70척만이 외항선이라 ‘국제항해선박이 상당한 수준으로 가입해 있어야 한다’라는 조항을 충족하지 못했다면서 거절하였다. 2007년경, China Club이 IGA 가입신청을 했을 때 IG의 거절이유는 ‘가입선박이 대부분 중국회사 선박’이라서였다.
1989년에 유조선 Exxon Valdez호가 알라스카에서 초대형 오염사고를 내자, 미국은 다음 해에 해양오염방지법(OPA 90)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유류오염손해배상책임보험이 필요해진 많은 유조선이 American Club에 가입했다. 이후 IG가 미국 기항 유조선에 대해 할증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하자 다수의 미국내 유조부선들이 보험료할증을 피해 American Club을 떠나 Lloyd’s로 이동하였다. 이 영향으로 1993년에 510만톤이었던 American Club 가입톤수는 1995년에는 380만톤으로 감소하였다. IG 재보험회원이 되던 해인 1989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클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하고 선종과 선적국에 있어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외국선박을 더 많이 가입시켜야 하고 IG Pool 정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American Club이 IG Pool 정회원이 아닌 한 외국선사가 가입을 안할 것이고, 외국선사가 많이 가입해 있지 않은 American Club의 정회원 신청을 IG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딜레마였다.
1994년 초 American Club은 새 항로를 그리기로 하고는 Mercer Management Consulting에게 발전전략 수립을 의뢰하였다. 1994년 11월에 승인된 발전전략 ‘Vision 2000’은 2000년까지 가입톤수를 1천만톤으로 올리자는 계획이었다. 발전전략이 요구한 것은 ‘London에 사무실을 열고, 탈퇴보험료(release call) 제도를 도입하고, 보험상품을 확대하고, 미국내 마켓팅을 강화하고, 국제적 경험이 있는 CEO를 영입하라’라는 것이었다. 
American Club은 발전전략에 따라 당시 보험중개회사 Jardine Insurance Brokers International에서 해상보험부문 회장을 맡고 있던 Joseph E.M. Hughes를 영입하였다. 당시 40세였던 Joe는 영국 Wales 출신인데 명문 Oxford를 졸업한 변호사로 Jardine에 들어가기 전에 Gard Club과 Steamship Mutual Club에서 국제적 P&I 안팎을 경험했다. Joe는 1995년 8월 American Club의 관리회사인 Shipowners Claims Bureau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었다. 

 

Joe는 기존의 발전전략을 수용하여 탈퇴보험료 제도를 도입하고 FD&D(용선분쟁 법률비용 보상보험)를 1996년에 도입하면서 세계 각지, 특히 한국과 그리스에서 가입유치 활동을 벌였다. 1996년에 런던소재 회계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아 Joe는 다섯 번째로 Pool 정회원 가입을 신청했다. 그해 10월 IG는 다시 한번 이를 거절하였다. 
IG Pool 정회원 자격 획득은 Joe의 최우선 과제였다. Pool 정회원이 되어야만 재보험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보았다. IG Pool 정회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재보험료 경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이미지와 명성이 걸린 문제였다. Joe는 1997년 7월에 여섯 번째로 IG Pool 정회원 가입을 신청했고, 마침내 IG는 11월에 이를 승인했다. American Club은 설립 80주년이 되는 1998년 2월부터 IG Pool 정회원이 되었다.
1998년 1월 American Club의 가입톤수는 490만톤이었다. Pool 정회원이 된 같은 해 2월 가입톤수는 600만톤으로 급등하였다. 5년 후 2003년에는 1,910만톤으로 도약하였다. 미국선사가 아닌 외국선사의 가입도 증가하였다. 1995년에는 가입톤수의 95%가 미국선대였는데, 2002년에는 유럽선대가 50%, 아시아선대가 11%를 차지했다. 2006년에는 63%가 유럽, 17%가 아시아선대였고, 미국선대는 14%였다. 발전전략 ’Vision 2000’에 따라 사업을 확장하고 국제화하기 시작한 1995년에 가입톤수는 300만톤 정도였는데, 2015년에 1,500만톤으로 성장했고, 보험료수입은 1995년에 2천만달러였는데, 18년 후인 2013년에는 1억 9,500만달러로 성장하였다.

 

American Club은 1998년에 런던사무실을 오픈하여 런던의 P&I broker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인수할 배가 나타났을 때 American Club을 떠올리게 하라는 것이었다. 2001년에는 Korea P&I Club의 재보험자였던 British Marine P&I의 Stuart Todd를 보험계약책임자로 영입하였다. 그는 그리스와 지중해 선주들과 친분이 있었다. 이를 두고 TradeWinds는 ‛작은 American Club의 쿠테타’라고 표현하였다. Todd는 “American Club은 small club이므로 Club의 기초가 확고함을 확신시키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개별적인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005년에는 그리스 피레우스에 사무실을 냈고 2007년에는 상하이에, 2013년에는 홍콩에 사무실을 오픈했다. 2016년에는 휴스턴에 사무실을 냈다. American Club은 1998년 2월 IG Pool 정회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적 P&I Club으로 발돋움하였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Korea P&I Club의 중장기적 운영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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