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 결정

-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8다289825 판결 -

 

1. 서론

상법 제791조는 “개품운송계약은 운송인이 개개의 물건을 해상에서 선박으로 운송할 것을 인수하고, 송하인이 이에 대하여 운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한다. 즉 운송계약의 당사자는 운송인과 송하인이다. 개품운송계약에 관한 다수의 조항은 항해용선계약에 준용된다(상법 제841조 제1항). 한편 상법 제852조 제1항은 “운송인은 운송물을 수령한 후 송하인의 청구에 의하여 1통 또는 수통의 선하증권을 교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상법 제855조 제1항은 “용선자의 청구가 있는 경우 선박소유자는 운송물을 수령한 후에 제852조 및 제853조에 따라 선하증권을 발행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선하증권을 발행하고 교부받는 당사자 역시 운송인(선박소유자)과 송하인(항해용선자)이다.

이처럼 선하증권이 발행되는 경우 그 발행의무자는 운송인이고, 발행 청구자 및 교부수령권자는 송하인이다. 다만 상법 제852조 제3항은 “운송인은 선장 또는 그 밖의 대리인에게 선하증권의 교부를 …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선하증권의 발행이 성질상 대리에 친한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여 대리 발행을 허용하는 것이다. 주로 선장이 운송인의 대리인으로서 선하증권을 발행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육상 영업소의 대리인, 지점의 지배인, 또는 대리상이나 운송주선인 등이 운송인을 대리하여 발행할 수도 있다. 상행위의 대리에 있어서는 반드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아니하여도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있는 것이므로(상법 제48조), 위 대리인이 선하증권을 발행하면서 본인인 운송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아니하여도 운송인이 발행자가 된다.

그렇다면 송하인 측에서 선하증권 발행을 대리청구하고 대리 수령은 가능할 것인가? 더법률상 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선하증권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무역 실무상 이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선하증권을 소지할 실질적 권리 있는 자가 송하인을 대신하여 최초로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아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가능한가?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18다289825 판결(이하 통틀어 ‘대상판결’이라 한다)은 이를 긍정한 최초의 판례이다. 이하에서 살펴본다.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인도네시아 법인으로서 석탄을 생산, 공급하는 회사이고, 피고(한국서부발전 주식회사)는 전력자원의 개발, 발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이다. 피고보조참가인은 대한민국 법인으로서 석탄 광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다.

나. 원고는 2015. 6. 29. 및 2015. 9. 29. 같은 인도네시아 법인인 갑 회사와 사이에 원고가 갑 회사에 석탄을 공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석탄 매매계약(이하 ‘이 사건 제1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위 석탄 매매계약에 따른 대금지급은 직접지급 방식에 의하되, ① 선적 개시 시 계약대금의 50%, ② 선적 완료 시 계약대금의 40%, 그리고 ③ 갑 회사가 원고로부터 수출서류 및 원고가 서명한 사업송장 2부, ‘운임은 용선계약에 따라 지급’이라고 기재된 무사고 선하증권 3부를 수령한 후에 가격조정을 거쳐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다. 피고보조참가인은 2015. 10. 19. 피고와 사이에, 피고보조참가인이 피고에게 인도네시아산 석탄 300,000MT를 본선인도조건(FOB)으로 공급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2매매계약’이라 한다). 피고보조참가인은 피고와 체결한 매매계약 중 일부를 이행하기 위해 2015. 10. 27. 갑 회사와 사이에, 피고보조참가인이 갑 회사로부터 인도네이아산 석탄을 3회(각 항차 당 75,000MT)에 걸쳐 총 225,000MT를 본선인도조건(FOB)으로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3매매계약’이라 한다).

라. 이 사건 제1 내지 3매매계약에 의한 매도인, 매수인 관계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원고(인도네시아)] → [갑 회사(인도네시아)] → [피고보조참가인(한국)] → [피고(한국)]

마. 피고는 피고보조참가인과의 매매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2항차 석탄운송에 관하여는 대한민국 법인인 A 회사와, 3항차 석탄운송에 관하여는 대한민국 법인인 B 회사와 각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위 A, B 회사를 통틀어 이를 때에는 ‘이 사건 운송인들’이라 한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무아라 베라우 외항(Muara Berau Anchorage)에서 2015. 12. 16. 2항차 석탄이, 2016. 2. 17. 3항차 석탄이 각 운송인들의 선박에 선적되어 출항하였는데, 위 각 석탄은 이 사건 제1매매계약에 따라 원고가 선적하였다(이하 위 2, 3항차 석탄을 통틀어 ‘이 사건 각 석탄’이라 한다).

바. 운송인 A 회사를 대리한 C는 A 회사 선박의 선장을 대신하여, 운송인 B 회사를 대리한 D는 B 회사 선박의 선장을 대신하여, 각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선하증권 원본 3부씩을 발행하였고, 위 C는 2015. 12. 17. 2항차 석탄에 관한 선하증권 원본 3부 전부를, D는 2016. 2. 17. 3항차 석탄에 관한 선하증권 원본 3부 전부를 각 원고에게 교부하였다(이하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이라 한다).

 

〈선하증권〉

송하인(shipper) : 피고보조참가인을 대리한 갑 회사

수하인(consignee) : 지시에 따름(TO THE ORDER)

통지처(Notify address) : 피고

선적항(Port of Landing) : Muara Berau Anchorage, East Kalimantan, Indonesia

하역항(Port of discharge) : 태안, 한국(South Korea)

 

사. 그 후 이 사건 운송인들은 각 항차 석탄을 하역항인 우리나라 태안까지 운송한 후 각 항차에 관한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한 채 위 석탄을 최종 매수인인 피고에게 인도하였다. 한편 피고보조참가인은 위 각 항차 석탄이 인도네시아에서 선적되어 출항한 후 갑 회사에 석탄 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아. 원고는 이 사건 운송인들로부터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원본을 교부받은 이래 계속하여 그 원본들을 소지하고 있다.

 

3. 사건의 경과 및 법원의 판단

가.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예비적으로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원인으로 하여 이 사건 각 석탄의 가액 상당액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는, 피고가 이 사건 운송인들에게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제시하지 않고 이 사건 각 석탄을 수령한 행위는 위 각 석탄의 소유자이자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로서, 피고는 위 운송인들과 함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을 청구원인으로 한다.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위 각 석탄의 인도는 선하증권의 제시 및 교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데, 피고는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제시하지 않고 위 각 석탄을 인도받아 사용하였으며, 악의의 수익자이므로,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소지자인 원고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청구원인으로 한다.

나. 원고는 선하증권의 소지 권한과 관련하여, ①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실질적 송하인’으로서 위 각 선하증권을 정당하게 소지할 권리가 있고, ② 이 사건 각 석탄의 소유자로서 갑 회사에 대한 각 석탄대금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소지한 것이므로 위 각 선하증권을 정당하게 소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다. 제1심법원은 이 사건 운송인들과의 운송계약에서 정한 송하인은 피고보조참가인이라고 보아 원고의 위 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원고가 위 ②항에 따라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이 사건 각 선하증권에 대한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이 사건 각 운송인들이 위 각 선하증권과 상환함이 없이 위 각 석탄을 최종 매수인인 피고에게 인도함으로써 위 각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인 원고가 위 각 석탄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피고 역시 이 사건 각 선하증권 원본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위 각 선하증권 원본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피고보조참가인을 통하여 이 사건 각 운송인으로부터 이 사건 각 석탄을 인도받음으로써 이 사건 각 선하증권 원본의 소지인인 원고의 위 각 석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서, 위 운송인들과 피고가 위 공동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인도 당시의 운송물의 가액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원고 일부 승소).

라. 피고는 이에 대하여 항소하였고, 원고 역시 패소 부분에 대하여 부대항소 하였으나, 항소심법원은 피고의 항소와 원고의 부대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에서도 역시 자신이 ‘실질적 송하인’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는 피고보조참가인이 위 운송인들과의 운송계약 상 송하인이라고 판단하여 이를 배척하였으나, 원고는 이 사건 각 석탄의 소유자이자 최초 매도인으로서 이 사건 제1매매계약의 매수인인 갑 회사로부터 이 사건 각 석탄에 관한 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위한 담보로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수령할 권한이 있는 갑 회사의 승인 하에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수령하게 된 것이고, 갑 회사로부터 이 사건 각 석탄에 관한 매매대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정당하게 소지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제1심법원과 동일한 판단에 이르렀다.

마.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가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라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중 법리 부분에 관한 판시는 다음과 같다.


1) 운송인이 송하인에게 선하증권을 발행·교부하는 경우 송하인은 선하증권 최초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고, 그로부터 배서의 연속이나 그 밖에 다른 증거방법에 의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등 참조). 이때 그 소지인이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대법원 1997. 4. 11. 선고 96다42246 판결 등 참조), 송하인으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에 화체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송하인과의 법률관계, 선하증권의 문언 등에 따라 송하인을 대신하여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가 선하증권에 관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경우에도 위와 같은 법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고, 그로부터 담보의 목적으로 선하증권을 취득한 자도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 한편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인도함으로써 운송물에 관한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고(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다46795 판결 등 참조), 이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선하증권에 화체되어 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이전된다(대법원 1992. 2. 14. 선고 91다4249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운송물이 인도됨으로써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운송인 또는 운송인과 함께 그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4. 검토

가.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

대상판결을 포함하여 우리 판례 상 해상운송에 있어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계약상의 의무이행을 다하는 것이라는 법리가 확립되어 있다. 학설에 의하더라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 즉 적법한 소지인만이 운송물에 대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상법은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정당하게(적법하게) 이를 소지하고 있어야 함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만이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가진다는 법리는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가? 필자는 그것이 선하증권의 지시증권성과 물권적 효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1) 선하증권의 지시증권성

선하증권은 송하인의 운송계약에 따른 운송인에 대한 운송물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다. 이러한 점에서 선하증권은 채권증권이라고 설명된다. 이는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으로 이어지는데, 선하증권의 소지인은 선하증권에 의하여 증명이 되는 운송계약상의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한다.

나아가 선하증권은 지시증권(指示證券)이다. 지시채권이라 함은 증권 상의 특정인 또는 그가 지정한 자에게 변제하여야 하는 증권적 채권을 말하고, 이러한 지시채권을 표상하는 유가증권을 지시증권이라 한다. 민법은 제508조 내지 제522조에서 지시채권에 관한 일반 규정들을 두고 있고, 상법 제65조 제1항은 물건의 인도청구권을 표시하는 유가증권(화물상환증과 선하증권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등에 대하여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의 지시채권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는 외에 어음법 제12조 제1항, 제2항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지시채권에 관한 민법의 규정 중 중요한 것은 지시증권에 대한 배서의 ‘자격수여적 효력’에 관하여 정한 제513조이다. 민법 제513조 제1항 전문은 “증서의 점유자가 배서의 연속으로 그 권리를 증명하는 때에는 적법한 소지인으로 본다.”고 규정하는데, 형식적으로 배서의 연속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권리의 이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여 증권의 점유자를 적법한 소지인, 즉 정당한 소지인으로 법률상 추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권의 소지인은 자기가 권리자임을 증명할 필요 없이 배서의 연속을 증명함으로써 일응 증권에 화체된 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선하증권에 대하여는 상법 제861조, 제130조에서 ‘당연한 지시증권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하증권은 기명식인 경우에도 배서금지의 기재가 없으면 배서에 의하여 양도할 수 있다. 배서를 금지하는 뜻이 기재된 경우에는 배서에 의해서는 양도할 수 없고(상법 제861조, 제130조), 그러한 경우에는 일반 지명채권양도의 방법에 의하여서만 이를 양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배서금지의 기재에 의한 양도방법의 제한은 선하증권의 유통성에 결정적 제한을 가하므로, 배서금지문구(통상 “NONNEGOTIABLE” 또는 “NOT NEGOTIABLE” 로 표시됨)는 송하인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운송인이 기재할 수 있고, 송하인의 동의가 없으면 이를 기재할 수 없다고 이해된다.

이처럼 선하증권에 대하여 적용되는 민법의 지시채권에 관한 법률조항에서, 선하증권 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는 선하증권의 적법한 소지인(정당한 소지인)이어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판례와 학설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논리적 체계에 기초하여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만이 그에 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2) 선하증권의 물권적 효력

지시증권의 적법한 소지인이 그 지시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지시채권 모두에 통용되는 법리이다. 그런데 선하증권의 경우에 유독 그 소지인이 ‘정당한 소지인’이어야 함이 강조된다. 이는 선하증권의 물권적 효력 때문으로 생각된다. 우리 상법 제133조는 “화물상환증에 의하여 운송물을 받을 수 있는 자에게 화물상환증을 교부한 때에는 운송물 위에 행사하는 권리의 취득에 관하여 운송물을 인도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 상법 제861조는 이를 선하증권에도 준용하고 있다. 선하증권을 교부하면 동산 물권변동의 요건인 인도요건을 갖춘 것과 같이 되어, 선하증권의 교부로써 운송물에 관한 물권관계에 변동이 생기는 효력을 선하증권의 물권적 효력이라 한다. 이러한 물권적 효력은 위 법조문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운송물을 받을 수 있는 자”, 즉 적법하고 유효한 물권변동의 원인행위에 따른 권리를 갖춘 자에 대해서 발생한다. 이처럼 선하증권의 물권적 효력은 선하증권을 취득할 수 있는 실질적 권리를 갖춘 자가 선하증권을 취득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 ‘정당한 소지인’의 의미

그렇다면 ‘정당한 소지인’은 어떤 조건을 갖춘 자를 말하는가? 정당한 소지인은 원칙적으로 선하증권상의 형식상의 자격도 가지고 실질적인 권리도 가진 자를 말하나, 상속, 합병 등과 같이 선하증권상의 권리가 당연히 이전되는 경우에는 형식적 자격이 없더라도 정당한 소지인이 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정당한 소지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선하증권상의 형식상의 자격을 갖출 필요는 없고, 선하증권을 취득할 수 있는 법률상 적법하고 유효한 원인관계, 즉 실질적 권리를 갖춘 자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선하증권상의 형식상의 자격은, 지시증권인 선하증권 소지자가 적법한 소지인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만약 지시증권을 적법하게 취득할 실질적 권리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비록 형식상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더라고 권리행사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대상판결을 비롯한 판례 역시,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배서에 의하지 아니하고 권리를 취득한 경우에는 배서의 연속에 의하여 그 자격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다른 증거방법에 의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음을 입증하여 그 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하여 신용장 개설은행에 신용장대금을 지급하고 배서 없이 선하증권을 소지한 수입자가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라고 판단하였고, 같은 맥락에서 신용장 발행은행이 수출대금의 결제를 거부하고 자신이 수취인으로 기재된 운송증권을 다른 서류와 함께 반환한 경우, 이를 반환받은 국내 거래은행 또는 수출자는 운송증권을 그 수하인으로부터 적법하게 교부받은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그 증권이 표창하는 운송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한다고 하여 배서 없이 선하증권을 반환받은 국내 거래은행이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라고 판단하였다.

 

다. 송하인 아닌 사람이 최초로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은 경우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은 지시식 선하증권으로, 수하인은 송하인이 지시하는 자(TO THE ORDER)를 의미하며, 송하인은 배서에 의하여 운송물을 수령할 자를 지정할 수 있고 이 경우 최초의 정당한 소지인은 송하인이 된다. 대상판결은 “운송인이 송하인에게 선하증권을 발행·교부하는 경우 송하인은 선하증권 최초의 정당한 소지인이 되고, 그로부터 배서의 연속이나 그 밖에 다른 증거방법에 의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는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법리를 판시하였다. 이는 종래 확립된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상판결에서 문제가 된 쟁점은, 송하인인 피고보조참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최초로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은 경우에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운송인 측에서 선하증권을 대리 발행·교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송하인 측에서도 선하증권을 대리 발행·교부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대리 발행·교부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선하증권을 소지할 실질적 권리 있는 자가 송하인에 대한 선하증권의 발행·교부와 송하인의 배서에 의한 양도라는 절차를 생략하고 자신이 직접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받은 경우에도 그 선하증권 소지의 적법성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은 송하인과의 법률관계, 선하증권의 문언 등에 따라 송하인을 대신하여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가 선하증권에 관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경우에도 그 정당한 소지인으로서 선하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를 확인하였다. 이는 선하증권이 담보 목적으로 유통되는 거래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타당성을 긍정할 수 있다.

 

라. 선하증권상의 권리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권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운송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자에게 인도함으로써 운송물에 관한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이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선하증권에 화체되어 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이전된다. 따라서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운송물이 인도됨으로써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운송인 또는 운송인과 함께 그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는 이러한 법리를 기초로, 이 사건 운송인들로부터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이 사건 각 석탄을 인도받은 수입자인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운송인이 운송물을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인도함으로써 선하증권 소지인이 입은 손해는 그 인도 당시의 운송물의 가액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상당액이 된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전제에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원심판결이 정당함을 수긍하였다.

 

마. 관련 문제

이 사건은 이 사건 각 매매계약에 따른 대금 지급 방식이 직접지급방식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매도인인 원고에게 이 사건 선하증권(보다 정확히는 이 사건 각 석탄)을 양도담보로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필요에 따라 이 사건 각 석탄을 선적한 최초의 매도인인 원고가 선하증권을 송하인인 피고보조참가인 대신 발행·교부받은 것이다.

만약 이 사건 각 매매계약에 따른 대금 지급 방식이 신용장거래방식이었다면 위와 같이 매도인인 원고가 대신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는 방식으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용장 거래에 있어서 개설은행이나 매입은행은 자신에 대한 신용장 대금 청구 또는 매입 의뢰를 위해 제시받은 선적서류가 신용장에 기재된 사항과 문면상으로 일치되는지 여부 혹은 관계서류가 상태성과 정규성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조사할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신용장거래에 관계하는 매수 당사자들도 신용장 내용에 맞게 선하증권의 배서양도 등을 함으로써 대금 지급 거절 등의 위험을 피해야한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매수인측에서 FOB 조건으로 이 사건 각 석탄을 매수하였고, 그 대금지급의 방식이 직접지급방식이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사건에서는 선하증권의 준거법에 관한 쟁점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이 사건 각 운송인들과 송하인이 모두 대한민국 회사였고, 운송물의 목적지도 대한민국이었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심판결에서부터 준거법에 관한 고려 흔적이 나타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5. 결론

대상판결은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 결정에 관한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고, 송하인과의 법률관계, 선하증권의 문언 등에 따라 송하인을 대신하여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을 교부받을 권한이 있는 자가 선하증권에 관하여 실질적 권리를 취득한 경우에는 운송인으로부터 직접 선하증권을 발행·교부받아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우리 법원은 선하증권에 대한 실질적 권리 취득을 선하증권의 거래 형식을 갖추었는지보다 더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실무상 선하증권이 주로 금융과 담보 목적으로 활용되고, 그로 인한 선하증권 유통의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접근은 선하증권의 유통성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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