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해 11월 27일 개최된 ‘동아시아 해상법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필자인 이진홍 변호사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이다. 한국선박충돌법이 국제적인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분야와 그 외 한국법과 제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분야에 대한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편집자 주-  

 

<책임제한과 forum shopping 및 관할>
(1) 한국과 중국은 1976년 책임제한조약을 비준하지 않았지만 동 조약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국내법화하였으며 일본은 1976년 책임제한조약에 대한 1996년 의정서(protocol)를 비준하였다. (이하 간편하게 1996년 조약으로 약칭합니다.) 1996년 조약상 책임제한금액은 1976년 조약상의 책임제한금액보다 2.4배 이상 상향되었던 바, 1976년 책임제한금액보다 많은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 선박충돌의 당사자는, 1976년이 아닌 1996년 책임제한금액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지를 연구하게 된다.


(2) 만약, 동 아시아 3국이 모두 책임제한조약을 비준하였다면, 어느 한 나라에서 책임제한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다른 나라의 법원이 그 절차를 존중해주어야 하므로, forum shopping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을 것지만, 한국과 중국은 책임제한조약 비준국이 아니므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점과 관련 책임제한제도의 정신과 본질을 고려하건대, 한국과 중국이 책임제한조약 비준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책임제한절차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법원은 한국이 책임제한조약 비준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에서의 책임제한절차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점에 관한 한국판례가 아직은 없지만 중국과 일본 법원의 태도가 그렇다면 한국법원도 같은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3) 이와 같은 forum shopping은 이론상의 문제만은 아니고 실무상으로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금년 초여름 한국의 영해내인 인천 앞바다에서 파나마 선적 선박과 중국 선적 선박의 충돌사고가 있었는데 중국선박이 침몰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다. 중국선박의 과실이 경미한 것이 명백한 사안이어서 특히 책임제한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하였다. 가장 자연스러운 관할이라고 할 한국법원에서 구상절차가 진행되면 1976년 조약의 낮은 책임제한금액의 적용을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중국선주는 1996년 책임제한금액을 위하여 일본관할을 고려하게 되었다.  마침 파나마 선적 선박이 일본을 자주 기항하여 동 선박을 일본에서 우선특권으로 압류하였고 그 결과 일본에서 파나마 선주가 책임제한절차를 개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선주는 1996년 책임제한금액의 적용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반드시 같은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만,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Hebei Spirit 유류유출사고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책임제한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나, 동 선박의 선주 측이 중국에서 한국기업인 바지선의 선주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중국법원은 최근 중국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중간판결을 한 바 있다.


(4) 이상과 같이, 동 아시아 지역에서 대규모의 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하여 1976년 책임제한금액을 상회하는 청구권이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실무가는, 반드시 충돌사고가 발생한 장소에서만 재판을 한다는 전제를 가질 것만은 아니고 1996년 책임제한금액의 적용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선박충돌사고에 관하여 일본법원이나 중국법원에서의 관할 및 forum shopping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은 본인의 식견을 넘어서는 것으로, 다만 그 실천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만 본인 경험으로부터 밝히고, 관련된 한국법에 관하여 살펴본다.


(6) 외국에서 벌어진 선박충돌사고에 관하여 한국법원은 당해 충돌사고와 한국과의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단순히 원고가 한국에 관련이 있다는 점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피고가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하는 데, 논의의 목적상 원고와 피고 모두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경우를 상정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법원에서의 관할권 창설을 위하여는 선박을 가압류 혹은 압류하여야 할 것이다. 동 아시아 3국은 모두 선박가압류 및 우선특권에 기한 선박압류제도를 가지고 있다. 선박가압류부터 살펴본다.


선박가압류의 결과 선박 또는 해방공탁금이 한국법원에 남게 된다. 피고의 재산인 선박이나 공탁금이 한국에 있으므로 한국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그 피고의 재산은 움직이는 선박이 우연히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가압류의 결과로 한국에 있게 된 것이므로, 이를 가지고 국제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이 점에 관하여는 판례가 있지 않다.


(7) 선박가압류의 경우는 한국재판관할권이 창설되는지 의문이 있지만, 우선특권에 기한 압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특권에 기한 압류는, 그대로 두면, 선박의 경매로 귀결되므로, 압류된 선박의 선주는 담보를 제공하고 채무부존재 혹은 우선특권부존재 소송이나 경매이의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소송들은, 압류당한 선박의 선주가 한국법원에서의 자신의 구제수단을 행사한 것이므로, 한국법원에서의 구제수단을 행사하며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그 소송에서 한국법원의 관할권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선박가압류의 경우와는 달리, 선박압류의 경우에는 한국법원이 외국에서 발생한 선박충돌사고에 관하여 관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8) 한국법은 1976년 책임제한금액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국에서 벌어진 선박충돌사고를 굳이 한국에서 재판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한국국제사법상 책임제한의 준거법은 선적국법이므로 선적국에 따라서는 한국법원에서 1996년 책임제한금액이 적용될 수 있다. 나아가 한 나라 이상에서 한 절차 이상의 책임제한절차가 있게 되면 추가되는 책임제한절차의 수만큼 손해회복 액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게 된다. 책임제한조약은 이와 같은 불합리함을 제거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책임제한조약 비준국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동아시아 3국의 법원이 타국에서의 책임제한절차를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과 한국이 책임제한조약을 정식으로 비준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보인다.
 
<선박가압류 및 압류>
(1) 대규모 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하면, 당사자들이 제일 처음 고려하는 사항들 중의 하나가 담보확보이다. 당사자들 간에 임의로 담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선박가압류나 선박압류를 통하여 담보확보 노력을 하게 된다. 본인 경험으로 보건데는 동 아시아 3국의 선박가압류 및 압류제도는 세부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의 제도를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다.


(2) 선박 가압류는, 청구인이 주장하는 채권에 대한 채무자가 소유하는 선박을 상대로 하여 할 수 있다. 한국판례의 중요한 특징은 채무자가 등기상으로 소유하는 선박뿐 아니라 채무자가 사실상 소유하는 선박을 상대로 하여도 가압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실선주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가압류가 많이 시행되는 나라는 한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가압류는 편의치적을 이용하여 one ship one company제도가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오늘날의 해운현실을 고려할 때, 담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당사자에게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3) 선박압류를 위하여는 선박우선특권이 부여된 청구권이 있어야만 하는데, 선박우선특권에 관한 한국국제사법상의 준거법은 선적국법이다. 충돌클레임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박우선특권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이점이 문제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박가압류는 담보를 얻는 것만이 목적이므로, 법원에 해방공탁을 하면 선박이 손쉽게 가압류부터 풀려난다. 그러나 우선특권에 기한 압류는 그대로 두면 선박경매로 넘어가게 되므로 단순한 해방공탁의 방법으로는 압류를 풀 수 없다. 압류를 풀기 위해서는 선주가 채무/우선특권부존재 확인소송 또는 경매이의소송을 제기하고 청구금액 상당의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4) 한국사법제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것이, 현금 이외에는 법원에 담보를 제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실무상 가장 흔히 사용하는 P&I Club이나 보험회사의 보증장으로는 법원에서 선박의 가압류나 압류를 해제할 수 없다. 물론, 선박압류 이후 양당사자가 보증장을 임의로 주고 받으며 가압류/압류 신청을 취하하는 방법으로 선박이 풀려나는 경우가 흔하나, 신청인이 이러한 담보방법에 동의하지 않으면, 달리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선주가 거액의 현금을 공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환차손 리스크도 부담하므로, 신청인이 보증장을 받지 않는 것은 선주를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신청인에게 유리한 보증장 조건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선주가 선박압류비용을 지급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5) 본인이 이해하는 바로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전세계 70개 국 이상이 보증장에 의하여 선박의 압류를 해제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은 대단한 후진국이다. 관련 문제점에 관하여 대법원이 검토를 한 후 실제로 제도개혁을 위하여 노력한 적도 있었으나 그 당시 한국보증보험회사가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제시하여 결국 무산되고 만 일도 있었다.


(6) 이와 같이 제도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양 당사자 사이에 보증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공탁이 야기하는 문제점은 특히 최근들어 흔치 않다. 다만, 보증장을 제공하지 않고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청구인을 애먹이다가 선박의 압류된 경우에는, 청구인이 이에 대한 감정적인 앙갚음으로 보증장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한국에서 선박이 압류/가압류 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에서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3. 한국해양안전심판원과 과실비율
(1) 동 아시아 3국 공히 해난사고의 사실 및 원인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정부기관을 가지고 있는 바 한국에서는 해양안전심판원이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영문이름은 Korea Marine Safety Tribunal이다.


(2)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은,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지만, 특히 법원의 판사들이 해난사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므로, 재결서에서의 사실 및 원인판단은 법원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이 점은 아마도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3) 한국해양안전심판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충돌과실비율에 관한 판단을 재결서에서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양 당사자가 과실비율판단에 관한 요청을 해양안전심판원에 해야 하는데, 한국의 변호사들은 흔히 이 요청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재결서에 과실비율에 관한 기재가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판단에 기초하여 한국의 변호사들이 과실비율에 관한 합의를 흔히 하는데, 반드시 재결서 내용 대로의 과실비율 합의를 하는 것은 아니나 양 당사자들이 합의를 하는데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된다.


(4) 이와 같이, 해양안전심판원이 과실비율 판단을 흔히 하므로, 해양안전심판원은 충돌사고 원인제공비율 산정지침을 만들어서 2007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추월선의 과실비율은 85%, 정박중인 선박의 과실비율은 5%등을 원칙으로 하는데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과실비율을 가감하고 있다.


(5) 인천, 목포, 부산 및 동해 4군데에 지역해양안전심판원이 있는데 이들 지역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에 대하여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2심 청구를 할 수 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제한적인 사유를 들어 재결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대법원에의 제소는 흔치 않다.
 
4. 선박충돌에 있어서의 정기용선자의 책임
(1) 정기용선계약 하에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영국법의 일반적인 흐름은 정기용선자가 아닌 선주가 운송계약상의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만, 이 문제에 관하여 각국의 학설과 판례는 단순하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도, 흔히 Jasmin 사건으로 불리는 법리공방이 오랜 기간 치열하게 있다가 선주를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보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2) 한국의 경우는 소위 Polsa Dos 사건으로 불리는 대법원 판결이 선주가 아닌 정기용선자를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보았다. 학설은 동 판결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바, Polsa Dos 판결이 정식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으나, 현재 동 판결의 권위는 의문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동 판결과 다른 결론에 이르는 판결들도 있다. Polsa Dos 판결 하에서, 그 법리를 그대로 밀고 나가면, 선박충돌사건에 대하여도 정기용선자가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책임에 관하여는 보험이 없으므로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대법원은 선박충돌사고에서 책임의 주체는 정기용선자가 아닌 선주라는 점을 명백히 하는 판결을 2003년 선고하여 이와 관련된 혼란은 정리되었다.
 
5.  예인선단이 관련된 선박충돌 및 책임제한
(1) 예인선단이 관련된 충돌의 경우, 예인선과 피예인선을 하나의 선박 개념으로 보는 소위 예선열일체의 원칙을 채택하지 않고, 예인선과 피예인선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실이 있는지를 규명하여 해결한다는 것이 학설과 판례에 일반적인 경향이다.


(2) 이 문제는 책임제한액 산정에 있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바, 예컨대 예인선과 피예인선 양자에게 충돌과실이 있는 경우, 예인선과 피예인선의 책임제한액을 각각 별도로 계산한 다음, 두 금액을 합산하여 예인선단의 책임제한액으로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태안 유조선 사건에서 삼성 예인선단의 책임제한액수에 관하여, 1심 및 2심 법원은 두 척의 예인선, 한 척의 앵커선 및 바지선 모두 충돌과실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이들 4척의 책임제한액을 별도로 산정한 다음 이 금액들을 합산한 금액을 책임제한액으로 하였다.


(3) 예인선에게만 과실이 있고 예인선의 선주/운항자가 피예인선과 아무런 관련이없는 경우 예인선만의 총톤수를 기준으로 책임제한액을 산정하게 된다.
 
6.  충돌사건에서 물적손해에 관한 연대책임의 배제
한국 및 중국은 세계적인 주류적인 흐름과 같이 충돌사건에서 물적손해에 관하여 당해선박의 과실비율에 상응하는 책임만 부담하는 법제를 가지고 있으나, 일본은 물적손해에 관하여도 연대책임을 부담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진 홍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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